휴정기와 변호사의 일상
휴정기와 변호사의 일상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3.01.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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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1951년 1월 4일.

1월 4일은 72년 전 한국전쟁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의 전격 참전으로 국군이 후퇴하면서 목전이었던 한반도 통일이 물거품이 되고 결국 지금의 휴전선으로 남북이 분단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어 전쟁의 양상이 달라진 날입니다.

국군이 압록강물을 마시며 전쟁의 끝과 통일을 기대하고 있었음에도 중국의 참전이 낳은 1·4후퇴라는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38선 이북의 북위 38도에서 41도까지의 혹한에서 국토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마다했던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새해맞이가 되는 것이 응당 마땅합니다.

새해맞이에 먼저 예를 갖추고 지금에 해당하는 법조 휴정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휴정기는 법원의 법정에 재판이 없는 시기를 말합니다. 재판일정이 없으니 판사는 물론 재판에 참여하는 검사, 변호사 역시 휴식을 갖는 때입니다. 전국 법원이 공통으로 하계 2주(7월 마지막주에서 8월 첫주)와 동계 2주(12월 마지막주에서 1월 첫주)를 휴정기로 운영합니다. 하계 휴정기는 휴가철과 맞물려, 동계는 연말연초와 맞물려 격무에 시달리는 법조계에도 휴식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지금이 딱 휴정기를 맞고 있는데, 모든 것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휴정기를 어떻게 지내는가는 변호사들도 모두 다릅니다. 대체로 이 때 아니면 공식적으로 쉬는 기간이 쉽지 않아 법률사무실의 문을 닫고 업무의 수면 아래로 잠수에 들어갑니다. 카카오톡에 휴정기 휴무를 표시하기도 합니다. 멀리 휴가를 가기도 합니다. 또 일부 변호사들은 재판이 없어도 미루고 미룬 서류업무를 위해 창작의 고통을 겪습니다. 사무실 문을 닫아놓고 변호사실의 불빛만 켜져 있습니다. 저희도 사람인지라 이 시기에 일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반나절만 일하고 독서도 하고, 영화도 보고 싶습니다.

휴정기에 오롯이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유능해서 일의 마감을 잘 지켰거나 일에 여유가 있는 경우일 것입니다. 반대로 필자처럼 일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은 유능하지 못하거나 사건이 많은 경우일 것인데, 저는 유능하지 못해 시간을 더 필요로 하게 됩니다. 변호사라고 철인이 아닌데, 사건 상담 후 1-2주 내에 문서가 뚝닥 나올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십니다. 안부를 묻는다면서 언제 서류가 되는지 독촉성 연락이 끝이 없습니다. 사건 상담 시에 재판 일정을 충분히 안내하고 절차의 진행에서 누락이 없도록 챙기는 것은 변호사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임에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정신적 압박을 가해 옵니다.

변호사들이 보통 적게는 20건, 많게는 50건 내외의 사건을 동시에 진행하는 편입니다. 40건을 넘어가면 변호사 1인에게 과부하가 걸려 사건의 소화가 물리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사건의 유형마다 다르겠지만 수개월에서 1년 내외가 걸리는 재판이 허다한데, 어느 사건이 종결되면 새로운 사건이 수임되어 사건의 총량은 늘 비슷하게 유지됩니다. 그러니 상담 후 당장 1주일 만에 이의를 제기하시는 의뢰인들이 과한 것이 사실입니다. 변호사의 사건 수행량을 잊은 채 자기 사건을 진행하는데 무슨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냐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법조시장은 법률전문가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위기의 순간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입니다. 가장 자유롭고 주도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의뢰인과 친절하게 소통하면서 동시에 너무 사익에 치우치지 않게 공익 역시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의뢰인 역시 이기주의와 법률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휴정기에도 의뢰인의 사익과 공익 사이의 균형을 위한 법치는 작동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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