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의 시니어
여든의 시니어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1.02 1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새해를 맞이하면 젊은이와 아이들은 설빔을 입고 웃어른을 찾아가 절로 만수무강과 공경을 표하며 인생의 지혜를 배웠다.

세배를 받은 어른은 덕담과 세뱃돈을 아이에게 준다. 이 풍습은 오늘까지 이어져 어린이를 만나면 용돈을 주는 건 어른이 할 도리고, 어른을 뵈러 갈 적에는 봉투가 아니면 맛난 음식을 손에 들고 다님을 젊은이들이 할 도리로 알고 요즘도 몸소 실천한다.

요즘 같이 강박한 세상에 이 미풍이 사라지지 않음이 다행이라 여기는 여든의 시니어 앞에 젊은 지인이 세 살 된 손녀를 생활 한복을 입혀 나타났다. 자락 치마 끝에는 레이스를 달았고 주머니도 달렸다. 저고리는 턱받이가 저고리를 대신한다.

어찌나 앙증맞게 꾸몄던지 보는 이마다 인형 같다는 말을 한다. 환영하는 인사를 치마 주머니에 지폐 한 장을 넣는다. 아이의 할머니 아직 돈을 모른다 사양하는데 아이는 지폐가 빠질세라 주머니를 다독인다.

아이의 모습을 본 여든의 시니어는 며칠 전 자신의 생일날을 떠올린다. 사 남매 자녀가 엄마의 형제들을 모시고는 사촌들을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그리고는 준비해온 케이크 위 초에 불을 붙이고 축하 송을 부르고 케이크 절단이 끝나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느지막이 또 하나의 케이크와 작은 왕관이 들어온다. 왕관을 머리에 얹어주고는 케이크 상자를 연다. 윗면에 면사포 쓴 여든의 시니어 결혼사진을 담았다. 오십오 년 전 흑백 사진이다. 그 옆에는 “김은혜님의 산수를 축하드립니다. 꽃보다 예쁘신 신부의 모습으로 항상 저희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저희 곁에 있어 주세요. 사랑합니다. ~ 사랑하는 조카 해준 이가 ~ ” 자신의 결혼사진을 보고 글귀를 듣자. 여든의 숫자에 공 하나를 떼어낸 여덟 살 난 아이처럼 기뻐서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좋아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본 주인공의 자녀들도 여세를 몰아 부모의 형제들에게 함께할 수 있어서 고맙다며 오늘 여든의 시니어가 아이의 주머니에 지폐를 넣어주듯 지폐로 인사를 한다.

지폐를 받은 그분들도 본인의 숫자에서 공 하나를 떼어낸 아이로 변해 지폐가 든 봉투를 흔들며 좋아라 기뻐했지.

그 모습에 취한 조카들도 생신을 축하한다며 주머니를 채워준다. 그러자 또 여덟 살 여자아이가 되어 앞서 세 살 난 아이처럼 빠질세라 주머니를 다독인다.

여든의 시니어 형제는 칠 남매였는데 현재는 세 여인만 이 땅에 존재한다. 하여 세 집 자녀들은 특별한 날이 오면 세 늙은이를 함께 모신다. 조카가 여행 가자는 제의를 한다. 세 명의 시니어는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쪼로로 차에 오른다. 어김없이 “고모님, (이모님, 외숙모님) 즐거운 여행 하세요. 제가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인사와 지폐가든 봉투가 온다. 문자로 “나이 듦이 이렇게 좋을 수가. 고맙네, 맛난 거 사 먹을게” 인사한다.

우리는 만나면 과거 배곱팠던 쓴 추억은 꿀꺽 삼키고 서로를 다독이기를소 “요즘 젊은이들의 상식은 일 순위는 부부, 이 순위는 자녀, 삼 순위가 부모라 한다네요. 밀리고 있음에도 부모는 일순위로 착각하고 미쳐 봐주지 않으면 토라져 말도 거칠게 내뱉고 눈물을 훔치기가 일수라지요. 그러니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젊은 세대 간의 협력을 존중히 여기며 살아감이” 필요하다고 어른스럽게 다독이면서도 아이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