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잎 클로버가 쏟아지는 한 해
세 잎 클로버가 쏟아지는 한 해
  •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3.01.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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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연말이 다가오고 있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나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한 그분의 마음이 담겨 있었기에 더 반가웠던 선물. 이 행복한 마음을 혼자 간직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던 그때 평소 즐겨 찾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우연히 어떤 글을 보게 되었다.

글쓴이는 자신에게 일어난 감동적인 일을 라디오 사연으로 보냈고, 며칠 뒤 담당 작가로부터 며칠에 방송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이거다! 라는 생각에 바로 컴퓨터를 켰다. 하지만 생전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본 적이 없었기에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 어디로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문득 금방 읽은 글에서 언급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지나가다 한 번쯤은 들어봤었던 것 같지만 즐겨듣지도 않는 프로그램에 생뚱맞게 사연을 올리는 것이 다소 민망했지만, 혹여나 운이 좋아 방송에 나오게 된다면 선물을 받아 따스해진 내 마음만큼이나 지인도 방송을 들으며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정성스럽게 사연을 작성했다.

사연을 올리고 며칠 뒤,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는 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소 모르는 번호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 나였지만, 왠지 휴대전화 화면에 뜬 번호에서 쉽사리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통화버튼을 눌렀더니 상대방이 건넨 첫 마디는 정말 의외의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모 방송국 라디오 담당 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더니 내 이름과 사연의 제목을 말해주며 본인이 맞냐고 물었다.

얼떨떨했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맞는다고 말하니,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방송될 예정이니 꼭 들어달라는 말을 끝으로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흥분된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12월 23일. 떨리는 마음으로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를 잘 듣지 않아 주파수를 찾으면서도 꽤 애를 먹었지만, 다행히 방송이 시작되는 시간에 늦지 않게 맞출 수 있었고, 수많은 광고와 진행자의 인사를 거쳐 내 사연이 첫 사연으로 소개되었다.

나의 글을 누군가가 읽어주는 기분, 그것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기분은 짜릿하고 기쁘기도 했지만, 괜스레 무안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진행자는 사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는 끝자락에 선물을 보내준다는 말을 덧붙였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 얘기에 출근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내 인생을 빛나게 해줄 어떤 굉장한 좋은 일이 찾아오길 바라면서 살아왔었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마주하는 세상의 벽은 늘 내 생각보다 더 단단했고, 그만큼 좌절의 늪은 깊어져만 갔다. 그래서였을까.

이제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엄청난 행운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무섭도록 꾸준히 반복되는 내 일상에 소소하더라도 사소하지 않은 반짝이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물론 내 인생에 한 번쯤은 네 잎 클로버가 짠 하고 나타나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새해는 세 잎 클로버가 쏟아지는 인생으로 채워가고 싶다.

라디오 진행자가 말한 선물이 언제쯤 도착할지 예상조차 안 되지만, 도착하는 그 순간이 내 세 잎 클로버 행렬의 첫 주자가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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