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살게
밥 살게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3.01.0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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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새해가 밝았다. 힘차게 솟구치는 붉은 태양이 어제의 하늘을 찬란한 희망으로 흔든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지난날을 돌아보며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해 아쉬워한다. 후회하며 새로운 다짐을 한다. 매년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 새로운 다짐과 계획을 세웠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했지만 나 자신 만족할 만큼의 성과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대부분 사람은 한 해를 보내며 다사다난했다고 한다. 나는 다사다난했다기보다 코로나로 묶여 있던 일상이 느슨해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코로나로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이 “밥 살게” 만나자며 연락이 왔다. 공짜 밥이 생겨 좋기도 했지만 부담되었다.

70년 동안 매일 밥을 먹었고 앞으로도 계속 먹어야 할 밥이다. 새삼스레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는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했다.

우리나라는 신석기시대에 농사를 지으면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삼국 시대에는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쌀밥을 먹었다.

우리 조상은 밥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다. 밥을 짓는다고 했다. 건물을 짓는 것처럼 밥을 신중하고 정성껏 짓는 것으로 생각했다. 밥이 보약이요, 밥심으로 산다며 밥을 삶의 원천으로 여겼다. 밥상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밥이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나고 건강할 수 있다. 하지만 쌀이 무척 귀하고 비쌌기 때문에 누구나 먹을 수는 없었다. 쌀밥은 왕과 귀족들이 먹었다. 일반 백성들은 잡곡밥을 주로 먹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야 일반 백성들도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인해 1960년대까지 극심한 굶주림 속에 살아야 했다.

보릿고개 시절 동네 어른을 만나면 “진지 드셨습니까”하며 인사를 했다. 요즈음은 “안녕하세요”로 인사한다. 친한 사람과 헤어지면서 인사말로 “언제 밥 먹자”라 했고 고마운 사람에게는 “나중에 밥 한번 먹자”라고 했다. 아픈 친구에게는 “밥은 꼭 챙겨 먹어” 한심한 친구에게는 “저래서 밥은 먹고살겠나” 무모한 친구를 말릴 때 “그게 밥 먹여주냐” 나쁜 사이일 때 “그 사람 하곤 밥도 먹기 싫어” 하며 다양하게 밥이란 단어를 우리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축하할 일이 생기면 타인이 당사자에게 축하의 밥을 사주었다. 요즈음은 코로나로 인한 문화의 변화인지 아니면 경제적 여유가 가져온 현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사자가 “밥 살게” 하며 모 식당으로 초대한다.

문학상을 받은 지인, 저서를 발간한 지인, 문학 공모전에 당선된 지인, 천 원에 구입한 연금복권이 2등에 당첨되어 10년간 매달 100만 원을 받게 된 지인,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된 지인, 문학 단체장을 맡은 지인, 지방 언론에 방영된 지인, 생일을 맞아 “밥 살게” 하는 지인 등 밥 사는 이유도 다양했다. 좋은 일로 즐거워하는 지인 덕에 참 행복한 연말이었다.

지난해는 받기만 하고 베풀지 못했다. 도리를 다하고 살 수만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최소한의 도리를 하며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녹록하지 않다.

올해는 “쟤 진짜 밥맛 없는 놈이야” 소리 듣지 않고 “나중에 밥 한번 먹자” 소리 듣는 사람, 지인들에게 “밥 살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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