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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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2.12.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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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요 며칠 눈이 많이 내렸다. 창밖으로 바라보는 눈은 소녀의 마음처럼 설렌다. 커피생각도 간절해진다. 그러나 외출이 잡히면 눈은 걱정을 부른다. 산골에 살다 보니 날씨가 사나워지면 큰길까지 나가는 일이 만만치가 않아 몸을 사리게 된다. 그럼에도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오늘 있다.

존경하는 문학의 대선배님이 축사를 하셨다. 그런데 팔십이 되어 요즈음 설거지를 하신단다. 평소 근엄하신, 전형적인 우리 시대의 어른이시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고 하던 시대를 살아 오신 분이다. 그런 분이 느닷없이 설거지를 하신다고 하셔서 웃었다. 엄숙하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설거지를 몇 개월 해보니 우리의 일상생활이 문학이고 철학이고 삶이 되는 것을 팔십이 되어 알았다고 솔직한 고백을 하셨다. 예전에는 여자회원들의 책을 받으면 몇 편 읽다 보면 생활 속에서 일어난 글이 대부분이므로 별 흥미가 없으셨단다. 사모님 병환으로 인하여 부엌 설거지를 시작하셨지만 인생의 설거지도 생각하셨다는 대선배님 축사는 감동이었다.

문학의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기본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고 한 것처럼 글을 쓰면 어디서든 다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요건, 자격,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콕 박힌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는 일상이 권태로울 만도 하련만 평생을 하면서 글을 쓰는 여류작가들이 대단해 보인다고 하셨다.

나는 올해 들깨농사를 지었다. 그게 너무나 뿌듯하고 좋아서 수확도 하기 전에 지인들에게 깨를 털어 기름을 짜면 한 병씩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들깨수확이 좋지 않았다. 뱉어 놓은 말은 있고, 동네에서 들깨 두 말을 팔아서 기름을 짰다. 수확이 적어 못 주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밥은 잔뜩 먹고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하지 않아 불편한 것 같은 마음이었다. 보이지 않는 말도 마구 늘어놓으면 지저분한 사람이 된다. 설거지는 단순하게 음식을 먹은 그릇을 닦는 일만은 아니다.

내 나이 이순 중반에 돌아보니 설거지를 많이도 하며 살았다. 내 묘비명에 “설거지만 반복하다 여기 잠들다.”라고 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편은 일을 벌일 줄만 알지 치우는 것은 잘 못한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그만이지 담보 대출에 보증까지 서주는 일은 잘하지만 돌려받는 일은 서툴다. 그 뒷설거지는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그로 인해 결혼생활에 반은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요즈음엔 밥 먹은 설거지는 가끔 한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남자들이 밥하고 설거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다. 그럼에도 나는 부엌에서 무엇인가 하는 남자의 모습은 많이 낯설다.

선생님의 축사를 들으며 설거지야말로 우리 인생에 크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릇만 씻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씻어야 하고 말도 씻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개운해진다. 인생설거지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설거지는 어쩌면 우리가 사는 날까지 해야만 하는 일 중에 한가지일 것이다. 혹여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수고롭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임인년에 밥 한번 먹자, 차 한 잔 마시자고 여기저기 늘어놓은 말들을 서둘러 행하느라 연말이 더 분주했다.

세상일이나 개인의 일이나 벌여 놓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이치가 서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조화롭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지 싶기도 하다.

호랑이해의 끝자락, 부끄럽고 아쉬움도 많지만 탈 없이 살아온 내 시간에 감사한다. 오늘 또 눈발이 날린다. 난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물주전자 버튼을 누른다. 눈 내리는 마당으로 뛰어올 토끼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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