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말하다
몸이 말하다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12.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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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서다 말고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 쇠망치가 머리를 힘껏 내려치는 것처럼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 발가락 하나 꼼지락거릴 수 없었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추욱 늘어진 신체, 산 송장에 지나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하니 금세 등허리엔 욕창이 번졌다. 순식간에 나락에 떨어진 느낌, 움직이지 못하니 병원에 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엷은 베내다 판을 누워서 꿈쩍도 못 하는 등허리 쪽으로 밀어 넣어 네 귀퉁이를 사람들이 어렵게 붙잡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서 차에 싣고 그야말로 천천히 병원에 갔던 그때 나는 서른한 살의 쌩쌩한 주부였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내가 널브러져 꼼짝 못 한다는 거짓말 같은 현실. 들것에 실려 병원에 실려 가는 내 등 뒤에서 구경하던 이웃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안 됐다며 다시는 못 돌아올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는 얘기를 훗날 전해 듣기도 했다.

산부인과를 위시해서 신경외과 정형외과를 돌아다니며 온갖 검사를 다 한 후에도 시원한 병명을 전해 듣지 못했다. 신체의 모든 검사 수치가 정상이어서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병명이라도 알아야 치료에 매진하든지 말든지 할 것인데, 멀뚱멀뚱 천장만 쳐다보고 누워서 나날을 허송해야 하는 병원 생활, 번지는 욕창을 방지한다고 두꺼운 스펀지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서 깔고 누워 지낸 대책 없던 나날들. 누군가는 신병이 의심된다고 굿을 해보면 어떠냐는 소리도 나왔다. 이때쯤일 것이다. 정확한 병명이 없을 때 싸잡아 쓰는 흔한 말, 신경성이 의심된다나 어쩐다나.

그때 병원에서 하루 3번씩 꼬박꼬박 복용하던 처방약이 고작 아로나민과 삐콤 등 영양제와 신경안정제였다. 신경염이라니 병원서도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속수무책으로 그저 자연치유만을 기다리는 긴 시간만 필요했으리라.

발가락을 움직일 때 오던 극심한 통증이 무디어졌을 때까지 3개월이 걸렸다. 이제는 움직임을 잊어버린 굳어버린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재활이 필요했다. 퇴원해서 어찌어찌 재활에 힘을 쏟고 보니 고맙게도 일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빛나는 아침 해를 우러르며 걷는 기쁨을 새삼 만끽하는 오늘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왜 그랬을까? 아픈 데 하나 없던, 이제 겨우 서른 살을 갓 넘긴 싱싱한 나이에. 자고 일어나서 멀쩡하던 두 다리가 움직일 수 없다는 거짓말 같은 사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두 다리가 마비되기 직전 나는 극심한 절망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반을 당한 충격에다 엎친 데 덮친다고 남편이 하던 사업까지 실패하여 빚더미에 올라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진 상황, 빚쟁이들이 몰려들어 성화가 빗발쳤으므로 하루를 버티는 것마저 너무너무 지겨워서 늦은 밤 겨우 잠자리에 쓰러져 누울 때면 제발 아침에 깨어나지 말게 해달라고 빌고 빌었던 참담한 때였다.

내가 깨어나지 말든지 하늘과 땅이 맞닿아 버리든지 현실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라도 했으면 하고 탈출구 없는 절망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때, 나를 살리기 위해, 핍진한 정신과 참담한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말 못 하는 육체가 일생일대의 극약처방을 들고나온 것, 오랜 후에야 깨달았다. 육체도 말을 한다는 것, 나름으로 표현한다는 것, 천금 같은 육체의 전언을 나는 그때 절실하게 체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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