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그 집
목욕탕, 그 집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12.2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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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읍내에 `음성목욕탕'이 들어 선 건 1960년대 말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전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따라 읍내 목욕탕을 처음 간 것은 내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그 전에는 동네 개울에서 칠흑 같은 밤에 또래 친구들과 목욕을 하곤 했다. 날이 추워지면 어머니는 부엌 아궁이 앞에 큰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몸을 씻게 해 주셨다.

음성목욕탕 건물은 3층이었는데, 1층은 목욕탕이었고, 2층과 3층은 여관을 겸했다. 아마도 그렇게 큰 건물이 읍내에 들어 선 것은 그때로서는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목욕탕을 가는 날이 얼마나 가슴이 설레는 날이었는지 모른다. 사실 친구들과 개울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언제부턴가 점점 즐겁기 보다는 누군가 볼까 두려워 부랴부랴 해치우는 목욕이 되곤 했다. 그것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여자아이들에게 나타나는 2차 성징으로 인해 모든 것이 예민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이 가득 담긴 중앙의 온탕에 몸을 담그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읍내에서 유일했던 목욕탕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또한 목욕탕 인심도 넉넉하던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탕에는 세신사가 없어 처음 보는 사람끼리 등도 밀어주곤 했다. 그렇게 서로의 등을 밀어주다 보면 정이 생겨 길을 가다 만나면 안부를 묻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족이 목욕탕을 자주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름이면 뒤란의 펌프 물을 받아 하루 종일 태양빛에 데워진 물로, 겨울이면 아궁이 앞에서 대야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는 때가 더 많았다.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가 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은 바로 `음성목욕탕'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 집 목욕탕은 물이 좋다는 입소문에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이상하게도 목욕을 한 후 몸에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도 몸이 맨질맨질 했다. 그 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는 물이 좋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주인의 역할이 한몫을 하고 있었다. 몇 년 후에는 다른 목욕탕이 들어섰음에도 그 집 목욕탕은 언제나 사람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안주인은 언제나 목욕탕 입구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는데 풍채만큼이나 후덕한 모습을 지닌 사람이었다.

세월은 흘러 후덕한 인품에 풍채 좋은 안주인이 돌아가시자 언제부터인가 며느리가 그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가족이 되면 닮는다더니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가 보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그 집 목욕탕을 자주 이용하지 못한다. 일에 치여 사람이 드문 시간을 택해 목욕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문을 일찍 닫는 그 집을 이용하지 못한다. 대부분은 집에서 간단히 샤워를 하는 탓도 있지만 요즘은 이곳에도 24시간 운영하는 찜질방 겸 목욕탕이 있어 그곳을 이용하는 편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그 집으로 목욕을 하러 갔더랬다. 세월의 흔적은 목욕탕 곳곳에 남아있었다. 예전의 영화는 어디로 간 것일까. 목욕탕은 한산하고도 휑했다. 아담한 탈의실을 지나 탕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옛날 어머니와 등을 밀던 순간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소나무껍질 같은 손으로 딸의 등을 밀어주는 어머니, 아프다며 몸을 비비꼬는 딸, 어머니의 얼굴에도 딸의 얼굴에도 송글송글 맺힌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칼바람이 옷 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겨울이다. 따뜻한 그 집, 음성목욕탕에는 오늘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가 되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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