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소풍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2.12.2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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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한참을 사진 앞에 모여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친구들과 고향에 있는 사찰 입구 불교박물관에서 유물들을 관람하고 사찰의 오래된 모습들을 담은 사진전을 관람 중이다. 진열되어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이 우리의 눈을 반짝이게 하고 있다. 사진 속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느라 누구라 할 것 없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진열대에 바짝 붙어선 나도 아는 얼굴을 찾느라 눈길이 바쁘다. 뒤에 서 있는 친구들의 침 삼키는 소리, 숨소리마저 들릴 만큼 잠시 조용한듯하다가 이내 봇물 터지듯이 친근한 이름들을 하나둘 호명하며 반가워하고 있다.

우리들의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을소풍 사진이다. 그 무렵 고향 지역에 있는 조그만 사찰이 이름이 차츰 알려지고 신자들이 많이 찾아오기 시작한 시기이다. 학교에서 소풍을 그 사찰로 가게 되었다. 줄 맞춰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아 자연스러우며 표정들이 다채롭다. 사진에는 대부분 남자 친구들이 많으며 여자친구들은 몇 명만 얼굴이 보이고 뒤쪽에 돌아서 있어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살펴봐도 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소풍을 그곳으로 갔던 기억은 있는데 사진에는 다른 여자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찍히지 않았다.

열 살을 막 넘긴 귀여운 소년들이다. 크게 확대된 사진이지만 워낙 많은 인원이 한 컷에 들어있어 얼굴은 자그마하게 보인다. 한 친구는 소풍날이라고 그 시절 귀한 모자를 쓰고, 또 다른 친구는 가방까지 어깨에 걸치고 지금 보아도 촌티는커녕 제법 세련되게 보인다. 굵은 뿔테안경을 쓴 친구는 모두가 단박에 알아보았다. 대부분 빡빡머리에 엇비슷한 옷차림이지만 표정만은 티 없이 밝은 모습이다. 이순 고개를 훌쩍 넘긴 시점에서 반세기 세월을 뛰어넘어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돌아간 느낌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 송년회라는 이름으로 친구들이 고향에 모였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자주 얼굴을 보아오던 친구도 있지만 멀리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돌아온 친구, 같은 하늘 아래 살고는 있지만 아주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친구도 있다. 코로나19로 삼 년 만에 만남이 이뤄지다 보니 더더욱 세월의 흔적이 우리에게도 묻어있다. 어느새 이런저런 이유로 영영 만나지 못할 친구들도 하나둘 늘다 보니 한 해를 보내는 이때가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사진 속 아이들만 한 손주들이 있는 친구들도 여러 명 있다. 그런데도 어릴 적 친구들이라 그런지 만나면 그저 개구쟁이 시절로 돌아간다. 각자 흩어져 살아도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가장으로 또는 한 가정의 안주인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삶을 살아온 친구들이다. 이제 중요한 직책들을 내려놓고 일자리에서 한 발짝 물러난 입장들이 고만고만하니 서로를 보며 석양을 향해 가고 있음을 가늠한다.

사진 속에 날짜를 보니 가을의 어느 날이다. `가을소풍' 그렇다. 우리는 지금 생의 가을소풍 중이다. 소중한 친구들과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머무는 하루가 천천히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우리 앞의 생을 잘 걸어갈 것이다. 오늘의 소풍도 한 장의 사진처럼 우리 마음에 오래오래 남아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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