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내가 선택한 가족
친구, 내가 선택한 가족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2.12.25 16: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한 여성이 햇빛 기웃거리는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장을 넘기는 모습이 평화롭다. 손힘찬(오카타 마리토)작가의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책표지 그림이다. 아들이 향기로운 북 퍼퓸까지 뿌려서 서재 책상에 심리학 관련 책을 올려놓았다. 좀 쉬엄쉬엄 가라는 의미이다.

지난주 독서 모임에서 한 회원이 화두로 던진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동시성(同時性·synchronicity)현상이다. 무의식은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이론으로 일종의 텔레파시다. 독서 모임 회원들 간 파장이 같고 오래 전부터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주제로 토론한 시간이 많은 까닭일까. 예지 몽도 겹칠뿐더러 이제는 성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같은 지적 반려 관계가 됐다. 거문고 연주에 맞장구치는 백아와 종자기이기도 하고 막연한 고도(Godot)를 기다리는 인식의 감옥에서 벗어나 사고가 건강한 에고와 셀프를 응원하는 동반 성장의 관계이기도 하다.

인디언 속담에 친구란 내 슬픔을 함께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속한 독서회원들이 서로 그런 사이다. 경제학, 목재종이공학, 화학공학, 보건학, 도서관학, 영문학, 상담심리학, 종교학, 수학, 국문학, 국어교육학 등 전공들도 다양하지만, 교육이라는 교집합으로 뭉쳐 사회적 욕망 대신 책 읽기를 선택하고 서로 독려하는 사이다. 학교 관리자, 교수, 교사, 대학교 독서토론 강사들로 같은 책을 읽고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람다움'을 지향하며 인간의 무늬를 탐구해온 시간이 어언 8년이다. 퇴근 후에 도서관과 카페를 드나들며 북 토크 하던 시간이 일만 시간에 가깝다. 어느 분야든 위대한 업적을 이루려면 하루 세 시간씩 십 년을 투자해야 한다는 `일만(一萬) 시간의 법칙'을 실감한다. 이제는 어떤 책도 다양한 전공방식으로 독해하고 응용하는 융복합 독서방식을 취한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양자역학으로 풀어낼 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양자역학은 원자와 분자를 구성하는 입자인 전자, 양성자, 중성자와 다른 원자 구성 입자의 운동을 다루는 학문인데 그 과정을 컴퓨터 그림으로 출력해 와선 시를 대입해 설명해준다.

1만 시간의 법칙의 결과일까. 그동안 읽고 써서 발제한 독서 록이 수백 장이고 더 발전시키자는 의견이 모아져 인문연구회를 결성했다. 만장일치로 `서락(書樂)인문연구회'를 발족했고 올해 인문 에세이를 발간한 회원 세 명의 출간기념회와 함께 정식으로 창립기념회를 가졌다. 8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덜컹거리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으니 독서를 통해 날마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온 터이다.

성품은 타고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삶에서 감정노동이 심한 관계는 돈키호테형 결단과 정리가 필요하다. 인생에서 파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은 책을 읽고 사상과 철학을 교류하며 살 수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다. 선한 영향력으로 서로 비빌 언덕이 되어 준 사람들, 그 흔한 경쟁, 시기, 질투, 권력, 인정욕 하나 찾아볼 수 없으니 만남 자체가 힐링이다.

오카타 마리토 작가의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를 쉬엄쉬엄 넘기다가 「친구,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는 소제목에 잠시 친구 같고 가족 같은 독서 모임을 돌아본 시간이다.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함께 있을 때 불안하지 않고 평온한 사람은 그 자체로 완전한 휴식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