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책 2
겨울산책 2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2.12.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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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오솔길을 걷는다. 바람도 없는데 남아있는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나풀나풀 지는 낙엽의 춤사위는 나비의 날갯짓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어느 생이 마지막을 저토록 아름답게 마감할 수 있단 말인가.

언덕위에서 잠시 쉬어가고자 이곳저곳 가릴 것도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아 본다. 이물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염되지 않은 두텁게 쌓인 낙엽 위는 솜이불처럼 폭신하다. 윤기가 흐르는 매끄러운 갈참나무 잎이 쪼르륵 미동으로 짧게 미끄럼을 태운다.

“가까이 오라 /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라 /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 바람이 몸에 스민다 / 시몬! 너는 좋으냐 /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프랑스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구절이다. 가을철 날씨가 추워지면 무성했던 나뭇잎이 하나 둘씩 떨어진다. 떨어진 나뭇잎이 바닥에 뒹굴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보이면 우리네 마음도 덩달아 쓸쓸해진다. 그런데 당신은 아는가. 떨어지는 낙엽에도 순서가 있다는 것을?

길 옆에 묘지가 있다. 이미 오래전에 방치되었는지 산이 되어버린 묘. 한때는 잘나가던 분이셨는지 장군석도 있고 묘비석과 제상도 있다. 전에는 후손들이 시향제를 올렸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지금은 손이 끊겼던가? 아니면 가세가 기울어 벌초등 묘지 관리도 못하고 시제 또한 올리지 못하게 되었나보다. 나는 잠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시향제의 모습을 회상해 본다.

시향제를 지내기 전에 토신지위에 고사를 먼저 지낸다. 토지신에게 고사를 지내고 본격적으로 시향제가 시작되는데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정성들여 만든 음식이 상석에 차려지고 문중 분들은 의복을 갖춰 입는다.

시향제의 순서는 먼저 강신으로 신을 부른다. 그리고 초헌으로 제주가 첫 잔을 올리고 독축으로 축문을 읽는다. 아헌으로 항렬에 따라 잔을 올리며 참신으로 신주 앞에 절을 올린다. 종헌은 마지막 잔을 올리고 사신으로 신위를 태워 제례가 끝났음을 알린다. 음복으로 제례에 올린 음식을 참여한 문중 자손들이 나눠 먹는 것이다.

이 산길은 농장에서 보기에 오른쪽 길이다. 따뜻한 양지의 땅이다. 그런 곳이기에 묘지가 많다. 말하자면 풍수지리학에서 좌청룡 우백호라면 오른쪽에 있는 이 길은 호랑이산 쪽의 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지형에서 외청룡 외백호 주산 안산 태조산에 하천까지 모두 다 포함하고 천하 명당터가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있어봤자 이미 거긴 빈 땅이 아니다. 우청룡 좌백호는 좌청룡, 우백호라는 것은 묘지나 양택을 중심으로 뒤에서 왼쪽과 오른쪽에 산줄기 및 어떠한 형상이 안아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좌청룡이란 좌측에는 용이 지켜주고 우백호 우측에서는 호랑이가 지켜준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하면 드물기까지 한 건 아니지만 저렇게 완벽한 음택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미 누군가가 묏자리를 써 놓은 후일 것이다.

그래서 보통 풍수 따져서 묘를 쓴다고 할 때는 주산의 좌청룡 우백호를 따지는 경우보다, 산줄기가 주산으로부터 한쪽으로 뻗어나가는 중에 갈라져나온 산줄기가 고사리 손처럼 묫자리를 감싸주는 식으로 풍수를 해석한 경우가 훨씬 많다.

오래전에 이곳이 하노1리 능촌마을(능모링이)가 있던 곳이다. 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마을이었는데 읍내에서 빤히 보이는 곳임으로 도둑이 많이 들었단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하나둘씩 고개 넘어 현 능촌마을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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