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밤의 축제 동지
긴 밤의 축제 동지
  • 류호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 승인 2022.12.18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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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류호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류호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우리나라엔 24절기가 있어 그 중 가장 밤이 긴 날이 동짓날이다. 많은 절기가 있고 그 마다의 의미와 세시풍속이 있다지만, 낮과 밤의 길이가 뒤바뀌는 날, 즉 태양이 다시 높아지며 1년간의 새로운 달리기를 시작하는 날이기에 그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동지를 흔히 작은설(亞歲)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지 역시 다른 절기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의 풍속 및 절기 음식이 있어, 천지신과 조상을 위로한다든지, 새해의 풍흉을 점친다든지 하는 일들이 있지만, 보통은 모두가 잘 알듯이 `팥죽을 먹는 날'로 통한다.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찹쌀로 만든 새알심을 넣어 먼저 사당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고 했다.
지금의 2~30대 마저도 그런 경험이 거의 없겠지만,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할머니, 어머니가 동지에 팥죽을 끓여 그릇에 담아주며 `여기 저기 놓고 오너라'고 해서 장독대, 담장 위, 헛간, 마루 밑, 심지어 화장실에도 팥죽 그릇을 놓아두었던 기억이 있다. 예로부터 팥죽은 귀신을 ?는다(鬼畜)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어, 이렇게 집안 여기저기에 놓아두거나, 혹은 문간에 뿌려놓으면, 악귀를 쫓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민간의 신앙이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남아 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것에 대하여 `귀신을 쫓는 것이다'라고 설명해 주시면서도 `그래야 짐승들도 먹지' 라는 말을 함께 하시곤 했다. 귀신이야 그저 재밌는 이야기로 치더라도 굳이 어렵게 팥죽을 쑤어 내다 버리는 것 같아 갸우뚱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따뜻하고 지혜로운 풍습이 아닐 수 없다.
근래에는 미국의 핼로윈 축제가 마치 세계인의 축제인 마냥 널리 퍼져서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으로 즐기는 축제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 축제가 기원한 켈트족의 풍습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면, 죽은 이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아내며, 어려운 이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등 동지의 의미와 닮은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즐기는 핼로윈을 보면 이것이 과연 본래의 의미에 맞는 축제인지, 그 의미를 무색케 하는 내용과 사건들이 즐비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전통도 아닌 그러한 축제를 본래의 의도마저 상실한 채 단순한 파티로만 즐기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더군다나 그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거나 혹은 우리의 전통에 더욱 부합하는 동지라는 좋은 축제가 있는데도 말이다.
세시풍속을 보면 재밌는 풍습 속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여 살아가는 지혜가 담긴 너무나도 좋은 컨텐츠들이 많다.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파티가 아닐지라도 담백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마음 따뜻해지는 그런 이벤트들이 절기마다 있다.
굳이 귀신분장이 하고 싶다면 동짓날 도깨비, 빗자루귀신, 몽달귀신, 달걀귀신으로 못할 것은 뭐가 있나. 재밌는 귀신분장을 하고 따뜻한 팥죽 한 그릇 담아서 앞집 옆집과 나누어 먹으며 웃고 떠들 수 있다면 그야말로 건강한 축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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