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한 달, 양치기 소년
이태원 한 달, 양치기 소년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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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거듭된 거짓말에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정작 늑대가 `참'으로 나타났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어 비극이 만들어지고 만다.'

이솝우화로 알려진 양치기 소년이 주입하고자 하는 교훈은 통상 이런 식이다. `거짓말을 하지 말자!'

초원의 풍경이 좋은 알프스 산기슭이라고 치자. 가난했을 시절일 터이니, 어른들은 더 힘들지만 돈벌이가 더 좋은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다. 한가하며 힘들지 않는 양을 지키는 몫은 당연히 어린 소년의 차지가 된다.

소년이 방과 후이거나, 충분히 놀았으며 제 할 일을 다 마친 뒤에 `양치기'에 나선 상황이라면 이야깃거리가 전혀 되지 않는다. 소년 역시 찢어지게 가난해서 학교에 갈 처지가 못 되었을 것이고, 게다가 잠시도 무료하게 있을 수 없는 성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군다나 그 소년이 놀부 심보를 어느 정도 갖고 있고, 심심한 것을 참아내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이미 사건을 만들기에 충분한 구성요건을 갖춘 셈이다.

“늑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저 심심해서 소리친 것 뿐이다. 소중한 `재물'인 양을 늑대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놀란 어른들이 달려왔으나 `거짓'에 늑대가 나타날 리 있겠는가. 혼비백산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소년은 쾌감을 느끼었고, `거짓'의 늑대는 그 후 여러 차례 어른들을 속인 뒤,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되며 `반응'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방심이 익숙하게 된 소년과 어른들 사이에서 `양'들은 끝까지 안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소년이 유목민처럼 시력이 좋고 주의력과 관찰력마저 놀라운 경지여서 아주 멀리서 은밀하게 접근하는 늑대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라면. 보통 사람에 불과한, 그리하여 떼거리로 소란스러운 것을 힘으로 여기는 어른들이 `참'인 늑대를 `거짓'으로 단정한 것이라면. 게다가 교활하기 그지없는 늑대가 처음 한 두 번의 은밀한 침투를 시도하면서 `존재'를 믿지 않도록 하거나, `경계'를 풀어버리도록 점차 거리를 좁혀가는 계략을 쓴 것이라면.

`가정'한 몇 가지 경우의 수는, `우화'에 해당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길이 남을 작정인 `우화'는 대체로 직선적이며 보편적이다.

`거짓말을 하지 마라!'는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이 작심한 보편적 `도덕'인 셈이다. 현실의 `도덕'은 무기력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소년'과, 그들의 일탈을 두려워하는 꼰대의 떼거리 사이에 나뉘어 견고하게 포위되어있다. 그러므로 양치기 `소년'과 떼거리 어른은 같은 편이라는 보편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재물'로만 존재하는 `양'들의 생명은 위태롭지 않은 순간이 없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을 양치기 `소년'의 새빨간 거짓말로 단정할 수 있을 만큼, `지금/여기'에 보편적 도덕이 남아 있는가. 보이지 않게 숨어있는 늑대의 정체를 영영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실체가 있어도 `거짓말'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세상.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듭하면서 `참'과 `거짓'의 경계의 구분을 방해하는 늑대가 한 두 마리가 아닌 세상에 도덕은 보편적일 수 없다.

혼자 남아 `늑대'로부터 양을 지켜야 하는 `소년'의 앞선 경계의 외침을 `거짓말'로 단정하는 것과,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이 나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과 다른 점을 한 달이 지나도록 도저히 찾을 수 없다.

한 달 사이. 10.29 이태원 참사가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세상이 졸지에 `지옥처럼' 변한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책임도, 진정한 사과도 없이, 혈안이 되어 세상을 속이기에 급속히 진화하는 변함없음도 여전하다.

국민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매일매일 거듭되는 일터에서의 죽음 등 처참한 국민의 희생은 모두 숨어있던 그 시대 늑대들의 습격.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으로 위로하는 목메는 한 달. 살아남으려면 `양'들도 `소년'도 더 크게 외쳐야 하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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