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잃은 어른들
기대를 잃은 어른들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2.11.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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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크리스마스가 한 달 하고도 아직 며칠 더 남은 시점, 벌써 보고만 있어도 캐럴이 들리는 듯한 소품들이 여러 가게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크리스마스의 붉고 파릇파릇한 색들이 설렘이 아닌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앞으로 맞이해야 할 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느껴진 것이. 이런 나의 뜨뜻미지근한 감성 덕에 아이가 태어나고도 한 번도 우리 집에는 트리가 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친구들 집에는 휘황찬란하게 꾸민 트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왜 우리 집에는 트리가 한 번도 없었냐는 질문과 함께 올해는 꼭 자신도 트리를 갖고 싶다는 소망에 이르기까지 한편의 웅변과 같은 연설을 내 앞에서 펼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먹고 한 가게에 트리를 사러 들어섰다. 이미 발 빠른 사람들이 사 갔는지 크리스마스용품 판매대에는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이 보였고 그 자리를 채우려는 듯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엄마들로 보이는 여자들이 심각한 얼굴로 여럿 서 있었다.

나의 목표는 하나였다. 트리를 사는 것. 눈에 가장 먼저 띈 트리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길,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에서는 내가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이 한껏 묻어 있었다. 아이에게는 크리스마스가 흔히 알려진 예수님의 탄생 날이 아니었다.

자신이 갖고 싶은 선물을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을 수 있는 날일 뿐이었다.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어려운 이름의 장난감을 술술 읊으며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상상만으로도 구름을 걷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우리는 수많은 `기대'를 잃어간다. 엄마가 안아주고 업어줄 거라는 아주 원초적인 기대부터, 어린이날이나 생일, 혹은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선물을 받을 거라는 과도기적 기대, 그리고 가장 가엾게는 내가 어떤 사회적인 성과를 내지 않아도 내 가족이, 나의 부모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거라는 삶의 뿌리 같은 근본적인 기대까지. 남에게 기대할 수 없기에 스스로라도 기념일마다 나 자신을 챙겨보지만 어째 충분하지 않다. 또한 미진한 내 행보에도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고맙지만 스스로 한없이 초라해지는 마음까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머릿속을 휘젓는 많은 생각들 속에 가라앉고 있는데, 그 속을 비집고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 저번에도 장난감 사주면 많이 갖고 놀겠다고 하더니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아니?” 아이의 답변도 들린다. “이번에는 진짜~~엄청 많이 하늘만큼 가지고 놀 거야~~” 나는 안다. 장난감이 아이의 손에서 일주일이면 나가떨어질 것을. 그런데도 자신의 기대를 지키려는 아이의 간절하고도 거침없는 약속이 한없이 부러웠다.

누군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갖고 싶은 선물을 사줄 테니 말하라고 해도 그 사람의 지갑 사정을 먼저 걱정할 나는 순수하게 기대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어른인 척하는 어른이기에.

아이와는 사뭇 다른 표정을 하고 있던 아이의 엄마는 아마 크리스마스 전날 정성스레 포장한 선물을 아이의 머리맡에, 혹은 집에 있는 트리 밑에 놓을 것이다. 이처럼 어느덧 사랑하는 존재의 기대를 채워주고만 있는 가여운 어른들을 위해 산타할아버지가 그 옆에 키다리 아저씨 한 명씩 붙여주면 좋겠다. 기대할 수 없다면 기대라도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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