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접시꽃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11.1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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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이우걸의 시 `팽이'



시를 공부하는 모임에서였다. 시 한 편을 가져와 함께 읽고 느낀 점을 공유하는 시간의 일이다. 어릴 적 팽이를 가지고 놀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팽이 치는 동네 조무래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낸 터라 모두 팽이에 대해 할 말들이 많았다.

팽이는 맞을수록 씽씽 잘 돌아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 누구는 먼 나라의 노예를 말하고 누구는 전제국가 시절의 엄혹한 학대를 말하고 누구는 사흘이 멀다고 얻어맞으며 살았다는 폭력에 대해 말하는가 하면 무지개가 보일 정도로 얻어맞는 끔찍한 상황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면서 이야기꽃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자식 버릇 잘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는 허울 아래 혹독하게 두들겨 패던 누구의 아버지 얘기, 밖에 서는 그런 호인이 없는데 집에만 들어오면 애먼 마누라만 잡도리하는 못난 가장 등등 세상의 폭력에 대한 끝 모르는 대화 속에서 불쑥 강 선생이 이야기의 방향을 틀어 놓는다.

“왜 돌고 있는 팽이를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라고 했을까요?

“팽이가 돌아가는 모습이 접시처럼 보여서 쓴 것 아닐까요?”

꼿꼿이 서서 돌아가는 팽이가 접시꽃 느낌이 나서 썼을 수도 있겠지만 시인의 의도보다 독자의 느낌이 더 중요한 것이니까 일차적인 느낌을 넘어선 그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 시를 감상하는 자세 아닌가?

그런 전제 아래 다시 읽어 보면서 의미를 깨닫고 싶어 이런저런 생각들을 꺼내고 있었다.

왜 수많은 꽃 중에서 접시꽃으로 환치했는지,

접시꽃 꽃말이 단순함, 편안함이라고 한다니 무수한 고통도 길들면 아픔을 잊게 된다는 것인가?

“접시꽃이 쉽게 피는 꽃이 아닌 걸 말하는 것일까요?.”

접시꽃을 키워 본 이 여사 말이다.

접시꽃은 첫해엔 잎들만 무성하게 자라고 다음해에 가서야 꽃을 피운다고 알려 준다.

“쉽게 피지 않는 꽃이라니 어쩐지 < 난 쉬운 여자가 아니에요,>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누군가 웃어넘기려고 하는데 강 선생이 정색하고 접시꽃씨를 얻어다 심었던 얘기를 소상하게 얘기한다.

접시꽃을 좋아했단다. 도종환님의 <접시꽃 당신>을 인상 깊게 읽은 후로 더욱 접시꽃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하고 있다가 퇴직과 더불어 귀촌하게 된 다음해 봄, 접시꽃씨를 구해서 집 앞에 심었는데 예쁘게 잘 자라주었다고 했다. 넓적넓적한 이파리가 무성하도록 이울었는데 여름이 가고 가을도 지나도록 끝내 꽃대 하나 올라오지 않았다고 했다.

언제 꽃이 필까?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지만, 꽃잎 하나 필 기척도 없었다는 것, 배신감 같은 섭섭함으로 접시꽃을 뿌리째 모두 캐내어 버린 사건을 얘기하면서 이듬해 지인 집에서 뿌리째 옮겨심은 후 접시꽃을 볼 수 있었다며 접시꽃이 2년 만에 피는 걸 몰라서 그렇게 헤맨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니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못 배운다는 말을 상기하면서 어쩌면 몰라서 짓는 죄 또한 많음을 시사한다.

시 한 편을 읽는다는 것도 아는 것이 많아야 느낌이 풍성해지는 것 아닌가. 접시꽃이 첫해엔 무슨 짓을 해도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 시 <팽이>를 읽으면서 알게 된 오늘의 수확이다.

접시꽃, 어쩌면 인내라는 팽이채로 다른 꽃보다 더 많이 얻어맞은 후에야 피어나는 꽃인지 아닌지 한번 다시 눈여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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