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숫자
마지막 숫자
  • 한기연 시인
  • 승인 2022.11.15 1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시인
한기연 시인

 

은행나무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고 올려다본다.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 고택 옆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오백 년을 넘긴 보호수이다. 푸른 가을 하늘을 품으로 끌어안은 듯 노란 은행잎이 눈부시게 빛난다. 산빛으로 스며든 붉고 노란 단풍이 절정이다.

시월 마지막 주 일요일 아침, 벤치마킹을 가기 위해 모인 장소에 들뜬 마음을 누르는 숙연한 분위기다. 여기저기서 어젯밤 사고 이야기로 소란하다. 남편의 전화가 빗발친다. 남편이 전한 말은 큰아들이 가족 단체방에 `이태원 압사 사고 엄청 남'하는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 두절인 것이다. 메시지를 쓴 시간은 생각할 겨를없이 이태원에 작업실이 있다는 사실만 떠올랐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들뿐 아니라 친구에게 전화해도 받질 않는다. 다시 한번 메시지를 확인하니 아침 7시에 쓴 글이다. 다행이다.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소리 내 울고 있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연락되지 않는 딸을 찾아다니다가 연락이 된 후 안도와 함께 자식 같은 젊은이들의 죽음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 마음이 깊숙이 들어와 같이 눈물을 흘린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식 또래의 죽음은 가슴에 맺힌다. 그런 일을 보면서 나의 이기심은 `다행이다'라는 안도로 이어진다. 몇 년 전 둘째 아들의 친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함께 있다가 헤어지고 바로 난 사고여서 더욱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식의 무사함이 먼저였고, 친구의 죽음으로 충격받았을 내 자식의 슬픔이 떠올랐다. 이번 사고로 희비가 엇갈린 사연을 보는 마음이 복잡하다.

세월호 이후 가장 큰 참사라며 국내는 물론 외신 보도까지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거리두기 해제 후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모인 젊은이의 죽음은 살아남은 자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정부에서는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해서 고인의 명복을 기리고 슬픔을 함께했다.

고이 키운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화면 속 현장의 울부짖음과 울음소리조차 삼켜버린 슬픈 장면을 보면서 숫자 `1'의 아픔도 다시 생각났다. 어느 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형이 동생에게 계속 다급한 메시지를 남겨도 지워지지 않는 숫자 `1'에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간절한 마음이 담긴 숫자가 `읽음'으로 바뀌지 않는다.

2년 전 겨울,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방황했다. 늦은 밤 친구와 주고받던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SNS에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며 그리워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잊고 지내다가 이번 일을 보면서 다시 친구의 SNS에 접속해 보니 그대로다. 그리울 때마다 남긴 메시지도 남아 있다. 아마도 친구 남편이 휴대전화를 없애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나도 모르게 짧은 글을 쓴다.

얼마 전 TV에서 `홍제동 방화사건'에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그날의 방화사건으로 여섯 명의 소방관이 희생됐다. 겨울 추위도 아랑곳없이 무너진 건물더미를 장비 없이 맨손으로 치우는 동료소방관들의 절절함과 구조 후 연이은 동료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못하고 현장을 지켜야 했던 사명감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날의 기억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소방관은 마지막에 숫자 `46'과 `47'에 대해 말하며 또 한 번 눈물을 삼켰다. 그 숫자는 무전으로 주고받는 약어이다. `46'은 `알아들었어?' 이고 `47'은 `알아들었다'는 대답을 의미한다. 마지막 교신이 되어 버린 숫자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은행잎이 바람에 날아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