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이는 내 친구(3)
붕붕이는 내 친구(3)
  •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2.11.10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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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구름이 기숙사와 숲 사이에 있는 운동장에 도착했다. 붕붕이 생각을 하니 온몸에 기운이 쑥 빠졌다. `돼지 같은 붕붕!' 구름은 여전히 떨리는 팔다리를 두드리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운동장을 둘러싼 계단에서 도도가 철학자처럼 머리를 감싸 쥐고 앉았다. 물 먹은 병아리처럼 하늘을 향해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게으른 도도를 운동장에서 보는 건 체육 수업 아니고는 매우 드물었다.

지난밤 붕붕이에 대해 말하려고 달려갔다. 도도는 묻기는커녕 아예 관심 두지 않는 표정으로 자기 머릿속 세상에 빠져서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각한 표정을 해서 말 붙이기가 조심스러웠다.

“왜 꼼짝 안 해?” 도도의 행동이 의아하던 구름은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절벽처럼 위태로운 계단 아래로 어린 벌 키의 다섯 배만큼 바닥이 깊게 파였다. 도도가 어쩌지도 못해 떨기만 했다. 구름이 놀라 가슴이 콩닥거리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도도, 붕붕이 곁에서 잘난 체하며 떠들 땐 언제고.' 마음속으로 한편 고소했다. 사정이 어제와 다르니 긴장이 됐다.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말하기는 쉬웠으나, 아래를 내려다본 구름은 그만 어지러워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구름은 높은 곳을 무서워했다. “일이 잘 풀리긴 글렀어.” 욕을 한 것도 아닌데, 순간 둘이서 눈이 마주치자 구름은 머쓱했다. 도도 옆으로 가려고 힘을 내서 다리를 벌렸다가 다시 오므렸다. 머리가 뱅글뱅글 돌았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힘내, 도도!” 친구가 벌벌 떠는 걸 보면서 스스로 빠져나와야 한다는 말을 전하기 어려웠다.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외쳤다. “힘껏 날아서 이곳으로 와!” 도도는 버럭 화를 낼 것처럼 구름을 쏘아봤다. 구름의 말이 뾰족한 가시처럼 박혀 마음이 아팠다.

“넌 뭐, 다 잘해? 얼마 전 사고로 날개 끝이 잘려서 멀리 날 수 없는 걸 알면서.”도도가 말끝을 흐렸다.

“맞다, 우리랑 놀다가 나뭇가지에 걸려서 다쳤지. 미안해!” 구름은 하늘을 나는 법을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났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도도의 귀가 빨개졌다. “난, 뭐 그냥…….”

붕붕을 놀린 사실이 부끄러웠다. 도도는 구덩이가 점점 깊게 파이는 것 같아 머리가 아찔했다. “엄마, 어떡해. 떨어져 죽을 것 같아.” 도도가 울먹이자 구름은 속이 터졌다. `건넜다가 툭 치기라도 한다면. 안 돼. 도도를 설득하는 수밖에.' 잘못해 어깨를 건드리면 오히려 도도가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도도야, 포기하지 마. 넌 벌이니까 날 수 있잖아. 힘내!” “날 수 없어. 약 올려?” 둘이 실랑이를 했다. 까악까악.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까치 소리가 났다.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아! 비실비실해 보이지만 새끼 벌이라도 먹어야겠다.”

까치는 구름과 도도를 낚아채려고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엄마, 악. 살려줘!” 도도는 그림자가 드리운 하늘을 보았다. 까치의 매서운 발톱을 보고 놀라 소리 질렀다.

“위험해. 비켜!” 구름이 놀라서 도도를 향해 있는 힘껏 날아갔다. 구름의 손이 닿기도 전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파닥거리며 다가오는 까치를 피하다 그만 도도가 `툭'하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번쩍. 구름은 도도를 휘감고 아래로 향하는 빛줄기를 발견했다.

“안 돼. 에잇!” 구름이 빛에 끌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도도를 구하려고 날갯짓을 했다. 빛이 다시 구름을 안고 눈을 가리자 둘은 비명을 질렀다. 고꾸라지듯 구멍을 향해 떨어졌다. 좀처럼 깨어날 것 같지 않은 잠에 떨어진 구름과 도도는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밤처럼 어두운 터널을 지났다.

벽에서 별들이 호수 놀이를 하는 동안 물줄기 하나가 붕붕이 몸을 휘감아 돌다가 회오리처럼 어딘가로 데려갔다. `난 도대체 모르겠어.' 눈을 뜬 붕붕은 엉클어진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온통 빨개진 사방을 낯설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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