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연락망
비상 연락망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2.11.0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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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비상 연락망.

말 그대로 긴급하거나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조직 내 구성원들이 빨리 연락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체계다.

일선 지자체는 물론 검찰, 경찰 등 사법기관 등 모든 공공기관에 당연히 구축돼 있다. 목적은 당연히 신속한 연락을 통한 대비책 마련이다. 그런데 이 비상연락망이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때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해 인명 구조 요청이 119에 접수된 시간은 당일 오후 10시 15분. 하지만 경찰 최고 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고가 발생한지 2시간 만인 이튿날 0시 14분에 상황을 보고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윤 청장은 당시 휴가를 내고 충북 제천에서 지인들과 등산을 하고 술을 곁들인 저녁 식사 후 밤 11시에 취침에 들어갔다. 이후 경찰청 상황담당관이 뒤늦게 밤 11시 32분에 문자 메시지로 사고 발생 소식을 알렸으나 윤 청장은 보지 못하고 계속 자고 있었다. 20분 후 전화에도 응답을 하지 못했다.

연락이 닿은 시간은 22분 후인 30일 0시 14분. 그때야 윤 청장은 부랴부랴 여장을 챙겨 2시간여 거리인 서울 지휘본부로 향했다.

당시 대한민국 경찰의 비상연락망은 모두 `붕괴'해 있었다. 112치안 종합상황실 책임자는 근무지를 이탈했으며, 관할 경찰서장은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사고 현장에 차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면서 1시간이나 늑장 출동했다.

국민 시각에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경찰청장의 지휘 공백시간이 장장 2시간 동안 이어졌다는 점이다.

경찰에 처음 이태원 사고 상황이 접수된 시간은 오후 10시 18분. 그러나 용산경찰서장은 직속상관인 서울경찰청장에게 무려 1시간 16분 후에 이를 보고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어쩐 일인지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비상연락 시스템이라면 112신고 접수→용산경찰서장→서울경찰청장→경찰청장으로 연결되어야 할 보고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윤 청장의 지휘 공백 사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통상 휴가 중이라도 국가 치안 최고 책임자인 경찰청장은 국가 비상사태 발생에 대비해 24시간 `대기 모드'로 `작동 중'이어야 한다.

당연히 휴가 중 지방에서의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할지라도 항상 비상 연락이 가능하도록 현지 경찰에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대비했어야 한다. 더구나 그는 당일 현지 경찰들과 만찬을 함께 했다. 그런데 이런 지휘 공백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경찰청장을 수행한 비서관이라도 있었을 것 아닌가.

윤 청장은 7일 국회에 출석해 “이런(이태원 사고) 상황을 미처 예측하지 못하고 서울 근교에서 대비하지 못한 데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 눈높이와는 한참 수위가 낮은 변명이다. `예측하지 못해서 대비를 못한 데 대한 책임'이라니. 지휘 공백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을 건가.

군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적군이 휴전선을 뚫고 내려와 아군을 타격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사단장이 당일치기 휴가 중 등산 후 술을 먹고 곯아떨어져 자는 바람에 연락이 2시간째 안 되고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통령실 회의 중 윤희근 청장 면전에서 “(경찰이)아비규환 상황을 4시간이나 왜 물끄러미 지켜만 봤느냐. 납득이 안된다”고 질타했다.

그 자리에서 윤 청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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