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들
남겨진 자들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2.11.0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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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압사' `사고'`참사' `희생'등등 많은 단어가 눈과 귀에 켜켜이 쌓여가도 내 몸을 흐르는 슬픔을 따라 마음까지 와닿는 단어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이번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날 이후 많은 이가 슬픔에 빠졌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도, 없었던 사람도, 말로 전해 들은 사람도 매스컴을 향해 접한 사람도 모두가 눈을 감고 기도하며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점점 커져 세상을 등진 청춘들을 뒤따랐다.

사고가 난 새벽.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어두운 집안에 희뿌연 거실 등을 켜놓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어떤 예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제야 마주한 정적에 가만히 잠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공간에 있던 남편이 카톡을 보냈다. 영어로 뒤덮인 뉴스 기사 링크였다. 언제부터 영어 기사도 읽었대, 하는 코웃음 섞인 표정으로 누른 기사 속에 낯익은 지명이 보였다. `이태원' 그리고 숫자가 보였고, 죽음을 의미하는 death라는 단어가 보였다. 머리로는 문맥을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곧이어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절박하게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겁이 났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두려운 감정이 온 집안을 뒤덮고 있는 정적을 타고 나를 감싸고 있었다.

온갖 기사와 추모의 글이 쏟아졌다. 대부분이 이번 일로 인해 고통스럽게 떠나간 젊은 생명들을 애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비통한 마음은 그들보다 다른 이들에게 더 강하게 뻗어갔다. 바로 `남겨진 자들'이다. 죽은 자들을 향한 슬픔과 사후 대처에 대한 분노로 점철된 글을 몇 편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시 살아남은 생존자가 쓴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모두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다루었다는 점과 그 당시 상황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다뤘다는 점을 제외하고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 일들에서 살아남은 자들, 혹은 남겨진 자들의 처참한 기록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남겨진 이들의 애통함은 감히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이 단 한 겹도 가벼워지지 않고 끝내 그들의 뒤를 따를 때까지 자신들의 가슴을 짓밟고 찢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남겨진 이들이 자신의 생을 마치 형벌처럼 지고 갈 것 같은 앞으로의 시간에 더 가슴이 아프다. 가장 최근에 읽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이처럼 그들의 아픔은 지속된다.

그 어떤 말도 행동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런데도 함께 슬퍼하는 마음마저 포기할 수 없기에 무엇이 남겨진 이들을 진정으로 위할 수 있는 애도인지, 그런 애도가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 옷에 매달려 아무 힘없이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해가 비치면 눈치 없이 반짝이는 검은 리본이, 너도나도 쉴 새 없이 남발하는 추모의 해시태그가,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논란의 말소리들이 과연 진정 고통 속에 내던져진 이들을 위한 것일까. 답답한 마음에 올려다본 하늘에는 자신들로 인해 더 이상 남겨진 이들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저기서 흩날린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우리도 이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야 할 때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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