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과 새것이 함께할 때 삶에 추억이 쌓인다
옛것과 새것이 함께할 때 삶에 추억이 쌓인다
  • 오정교 건축사
  • 승인 2022.11.0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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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정교 건축사
오정교 건축사

 

내 고향 청주, 그리고 본정통(현 성안길). 그곳에서 80년 전에 나를 품어주었던 그 집이 그립다.

지금은 증축을 해서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어릴 적 수 많은 꿈을 그리며 수만 가지 추억이 담겨진 그 집!

그 집 뒤편에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고 자기를 자랑하면서 아름다운 꽃과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 주면서 자랑하던 그곳!

중앙공원 한복판에 당시 500살이나 잡수신 은행나무 한그루는 그 공원의 어른이며 터줏대감처럼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린 시절 뛰놀다 보면 옷이 흠뻑 젖어서 땀을 흘릴 때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쉼터로 자리를 내어주기도 한 그 나무.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주니 내 얼굴에서 웃음이 절로 난다. 마치 생전에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포근함도 느껴본다. 참 고마운 나무다.

나 혼자만이 이런 감성을 느끼는 것일까? 나와 함께 어깨동무하며 말뚝박기하며 놀던 그 친구들도, 또 다음 세대에게도 이와 같은 고마운 추억을 담아 줄 것이기에 건강하게 한 오백년 더 함께 해주기를 기도해본다.

그렇다. 추억이란게.

지난 일들이 그리워지고 생각이 마음속으로부터 스물스물 올라와서 어느새 기쁨의 눈물이 흐르게 하는구나.

그런데 이 추억이 담겨진 이 나무가 내 눈에서 홀연히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니 두려워지기도 하고 허전해질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마음에 새겨놓았던 추억이 사라지게 되면 어쩌나 아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할 것 같다.

옛것과 새것. 이것이 꼭 공존해야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시대는 풍조에 따라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열심히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 힘들도 지치고 기진맥진하게 된다. 이때 지난날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의 쉼터가 되어주고 품어주었던 그 나무를 추억할 때 새 힘이 솟아나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앞으로 삶에 더 큰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나는 집을 설계하고 집을 짓는 건축가이며 건축사이고 시공 특급기술자이다. 60여 년이나 이와 관련된 일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내가 살던 본정통이 이제는 왜 그런지 서먹해 보이고 정이 없어진다. 어느새 이웃 동네에 49층의 넘는 거대한 아파트가 우뚝 솟더니 여기저기에 콘크리트로 거대한 몸집을 한 건물들이 들어서니 이제 도시가 삭막하기까지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다가 내가 사랑하던 원도심의 공간은 어찌 되어가는 걸까?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의 그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씩 하나씩 지워져 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도시가 옛 모습도 잘 보존하면서 활성화되는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수도 있는데 이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나의 작은 모습이 도리어 부끄럽고 입이 다물어진다.

우리는 왜 우리가 살아온 옛것을 존중하며 미래를 지어가는 일에 각박할까? 미래는 우리가 살아온 흔적들을 존중하며 만들어 가야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우리가 살아온 흔적이 우리의 있게 해주는 추억이고 곧 나의 정체성이 됨을 잊어서는 아니 되지 않을까?

10월 닫는 이 시간에 철거냐, 보존이냐를 놓고 시끄러운 청주시청사의 문제에 난 건축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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