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벗에게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10.1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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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사람들은 평생 이해관계의 틀에 갇혀 세속적인 셈만을 반복하며 삶을 영위하곤 한다. 이런 삶들은 부와 명예 같은 물질적 가치에 매몰되어 한가로움 같은 정신적 가치에 대해서는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부와 명예에는 반드시 번거로움이 따르게 되어 있다.

이러한 인사의 번거로움을 벗어나서 살고자 하는 부류들도 역사 속에 존재해 왔는데,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도 그 중 하나였다.


벗에게(輞川閑居贈裴秀才迪)

寒山轉蒼翠(한산전창취) 차가운 산 차츰 푸르러지고
秋水日潺湲(추수일잔원) 가을 물은 날로 잔잔해지네
倚杖柴門外(의장시문외) 지팡이 짚고 사립문을 나서니
臨風聽暮蟬(임풍청모선) 바람에 실려 저녁 매미 소리 들려 오네
渡頭餘落日(도두여락일) 나루에는 석양빛 남아있고
墟里上孤煙(허리상고연) 마을에는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네
復値接輿醉(복치접여취) 또다시 접여를 만난 듯이 취하여
狂歌五柳前(광가오류전) 다섯 그루 버들 앞에서 미친 듯이 노래하네

이 시를 쓸 무렵 시인은 오랜 관직 생활을 정리하고 망천(輞川)이라는 한적한 시골 동네에 들어가 남은 여생을 보내는 중이었다.

관직을 벗어 버린지라 세속적 인사로 인해 발생하는 번거로운 일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시인의 소일은 바쁠 것도 없고 조바심 낼 것도 없다. 차츰 검은빛으로 변해 가는 가을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가을이 되어 한결 잔잔해진 물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다가 흥이 돋으면, 사립문을 열고 나가 지팡이를 짚고 쏘다니기도 한다. 바람에 실려 온 저녁 매미 소리는 덤으로 들려 온다.

나루에 남은 석양빛과 마을에 피어나는 한 줄기 연기가 한가로운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시인은 생각에 잠겨 본다.

자신처럼 사는 방식이 과연 과거에도 있었던가? 술에 취해 평생을 떠 돈초(楚)의 은사 접여(接輿)와 집 앞에 다섯 그루 버드나무를 심고 글짓기에 매진했던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같은 이들이 자신과 같은 부류일 것이라고 시인은 내심 자부하였는데, 그들과 시인의 공통점은 한 마디로 한가로운 삶에 대한 추구이다.

세속적 속성을 완전히 배제하면서 사는 삶은 불가능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세속적 가치에만 매몰되어 사는 것은 어리석고 불행한 일이다. 가끔은 번거로운 상태를 벗어나 한가로움에 젖을 수 있어야 그 삶이 윤택해지고 생기를 띠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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