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2.10.1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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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별빛 식당에 들어서자 칸막이가 설치된 1인 테이블에 몇몇 학생들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조용한 풍경에 당혹했지만 이내 수긍이 갔다. 이제는 비대면 소통방식에 더 익숙한 젊은이들, 식판과 마주한 스마트폰에 눈을 걸며 저마다 고독한 1인 독식이다. 먹는 둥, 마는 둥, 숨 막히는 고요가 낯설어 자리를 떴다.

새롭게 리모델링한 중앙도서관에 들어가 신간도서코너를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대출하느라 길게 늘어선 행렬도 앉아서 책을 읽는 학생도 보이지 않는다. 흑백 사진 같은 아날로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 때는' 하고 추억하는 연배라니 격세지감이다. 가장 중요한 시간, 바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사는가. 인터넷 수많은 북투버를 통해 귀로 독서하는 층이 보편인 시대에 아직도 한자리에 모여 종이책을 읽고 북 토크하려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오늘도 시작 30분 전인데 소프트웨어학과 학생이 강의실 문 앞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다. 독서토론 주제가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인 탓인지 표정이 진지하다. 우리가 이따금 고전을 읽는 이유는 덤불 같은 양심을 터치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책을 통해 선의 보편성, 인류가 나아가야 할 이상에 대한 각자의 소신과 철학을 밝힌다.

어떤 농부의 집에 얹혀사는 가난한 제화공 세묜은 양모피를 사려고 외상값을 받으러 나갔다가 교회 옆에 잔뜩 웅크린 채 누워있는 나그네를 발견한다. 실오라기 한 장 없이 벌거숭이로 버려진 그 젊은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고심 끝에 단벌 외투를 벗어 입히고는 집으로 데려온다. 아내 마뜨료나가 마뜩잖게 여기자 “마뜨료나, 자네 속에는 하나님이 없는가”라고 셰몬이 일침을 놓자 숙연해져 나그네를 위한 식단을 차린다. 미하일이 미소를 띠며 자신은 하나님의 천사인데 벌을 받아 잠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션 수행 중이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 사랑으로 보살펴준 두 분은 이제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단단히 걸어 잠근 교회 옆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벌거벗은 나그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일서 3:17~18)

학생들은 서슴없이 문장 속 신약성경 요한일서 구절을 거론하며 이웃을 위해서는 문이 꼭꼭 잠긴 교회들을 비판한다. 하나님이 천사 미하일에게 이 땅에 내려가 알아오라는 미션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성경을 적당히 코와 귀에 걸며 사랑보다도 물적 성장에 골몰하여 어려운 이웃도 돌보지 않는 상업형 종교들이 이제는 사회악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랑이 없는 곳엔 하나님도 없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인 까닭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으셨고 사람들이 협력해 살기를 원하므로 사랑을 강조하셨다. 이것이 천사 미하일이 벌을 받아 인간으로 살며 깨달은 하나님의 미션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시대 교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본질이 실종된 곳들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악에 대한 저항조차 할 수 없도록 순치된 노예도덕을 깨우기 위해 늘 양심을 터치하고 비폭력 도덕적 부활을 꿈꾼다. 그 동력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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