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이는 내 친구(1)
붕붕이는 내 친구(1)
  •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2.10.13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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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붕붕은 넝쿨 장미가 떨어진 빈 가지에 앉았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보았다. 숲속의 초록 곤충과 몸통이 노랗게 물든 일벌들이 모여 붕붕을 둘러싸고 서로 눈치만 봤다. “너, 입이 붙었니?” 구름은 입술 위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붕붕이 사흘째 말을 안 해서 숲속 마을에 비상이 걸렸다. 굼벵이와 나비가 붕붕의 허리 줄을 가리키며 저희끼리 수군거렸다. “혹시 까불다 실컷 얻어맞은 거 아냐?” “파란 줄은 어디서 난 거야?” “어머나, 세 줄씩이나.” 황색이던 붕붕의 퉁퉁한 허리 줄무늬가 파랗게 된 걸 보고 이런저런 말들이 쏟아졌다.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며 놀렸다. 붕붕은 눈을 꾹 감고 지진에 흔들리는 것처럼 몸을 비틀거렸다. 여기가 어딘지, 곤충은 왜 모여들어 괴롭히는지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붕붕은 머릿속이 쪼개지듯 쑤시고 기분이 몹시 나빴다. 머리카락이 구름을 얹은 모양의 노랑 벌과 눈이 마주치자 화를 냈다. “넌 누군데 날 뚫어지게 보니?” “나, 네 친구 구름이잖아. 너, 혹시 열 있는 거 아냐?” 붕붕이 몰라본다는 사실에 구름은 당황했다. 안색을 살피며 이마에 손을 얹으려고 다가서자 붕붕이 팔을 ‘탁’쳤다. “저리 가, 더러워.” 바라보던 도도가 심통이 났다. “더럽다고? 넌 뭐가 얼마나 잘났는데? 모래 장난만 하고 노는 게 어디서 큰 소리야?” 구름은 기분이 나빠져서 휙 고개를 돌렸다. 여럿이 괴롭히려고 모인 것도 아닌데 붕붕이 오해하는 것 같아서 친구들은 당황했다. 
붕붕은 평소 잘난 체가 심했다. 친구를 보기만 하면 “난, 셈도 잘하는 똑똑이, 너희는 바보.”라며 으스대기 일쑤였다. 숲은 어수선했다. 처음엔 붕붕이 얄미워서 거의 장난으로 시작한 일인데 마른 풀에 불 번지듯 오해가 커졌다. 붕붕이 기죽은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악이 안 나. 난 누구지?’ 당황한 붕붕이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땅에 코를 박을 것처럼 머리를 숙였다. 붕붕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제 허리를 쳐다보며 갸웃거렸다. “죽을병에 걸린 걸지도 몰라.” 애벌레가 굼벵이에게 눈을 찡긋하더니 한마디 했다. 나비는 붕붕이 진짜 바보라도 된 듯 숫자 ‘5’가 적힌 나뭇잎을 내밀었다. “설마 이렇게 쉬운 것도 몰라?” 도도는 손가락으로 파란 줄을 ‘툭’ 치며 깐족거렸다. 붕붕의 빰이 홍당무처럼 변하더니 눈물이 뚝 떨어졌다. ‘속 터져. 내가 알면 입 다물까? 이상한 아이들이야. 왜 여기 모인 거지? 도대체 생각이 안 나는데 나더러 어쩌란 거야.’ 붕붕은 뇌가 얼음 동굴에 들어간 것처럼 얼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여 머리통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깡통 소리가 났다. 붕붕은 다리 힘이 풀리고 떨려서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파르르 떨리는 팔을 들고 나뭇가지를 잡았다. 숲은 여러모로 안전과 거리가 멀었다. 
나무 사이로 날던 까치가 곤충이 모여있는 모양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까치는 가지 위에 앉으면서 날개를 파닥거렸다. 가을바람에 말라버린 가지가 덤불을 안고 ‘후두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가장 먼저 놀라 도망친 건 신발 다섯 켤레를 신고 발을 질질 끌며 걷던 애벌레였다. “어어. 하늘이 무너진다.” 애벌레는 새로 장만한 구두가 가지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다리에 힘을 주고 요리조리 궁둥이를 돌리며 도망쳤다. 나비와 벌들 눈에 먼저 띈 건 까치였다. “도망쳐!” 도도는 날개를 흔들며 꽁무니가 빠지도록 달아났다. 저마다 그만그만한 이유로 분주했다. 숲은 순식간에 한산해졌다. 
 
까치가 군침을 흘리든지 말든지 붕붕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떨기만 했다. 구름은 속이 탔다. “야, 붕붕! 빨리 움직여. 이따위면 나 혼자 가버린다. 너, 죽어도 난 몰라!” 붕붕은 도와달라는 것처럼 팔을 겨우 들고 손가락으로 구름을 가리켰다. “그래, 착하지. 넌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구름은 붕붕이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아 안심됐다. 말짱해진 듯 보이던 붕붕이 픽 쓰러지자 구름은 난감했다. “얜 왜 이래? 다들 도망쳐서 도와달랄 수도 없는데.” 붕붕을 안고 하늘로 오를 때 너무 힘이 들어서 구름은 쉬지 않고 투덜댔다. “돼지 같으니라고!” 붕붕의 날개를 단단히 잡고 마을의 육각형 모양의 기숙사를 향해 날아갔다. 구름은 붕붕을 마루에 겨우 눕히고 그만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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