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10.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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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내 안에는 서로 다른 내가 살고 있다. 차분하고 찬찬한 나와 산만하여 덜렁거리는 나. 수줍음 많고 소심한 나와 터프한 내가 극과 극을 이룬다. 사람들은 침착해 보이는 나의 외모를 그대로 성격인 줄 믿는 이가 많다. 꼼꼼히 챙긴다고 해도 빠트리고 다니기 일쑤다. 핸드폰을 두고 출근하는 일은 다반사고 열쇠를 안 가지고 와 다시 3층을 올라가야 하는 일이 잦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도 당황스럽다.

어제도 시간에 쫓겨 서둘렀다. 옷매무새를 마친 뒤 끝으로 시계를 차고 급히 차를 몰아 약속장소로 갔다. 허둥대며 차에서 내리려는데 손목이 허전했다. 집에 있으려니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장소를 옮기는 틈을 타 가 보았다. 없다. 가슴에 철렁 소리를 내며 파도가 부딪힌다.

내가 갔던 동선(動線)을 따라 가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차에 있을까하여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아직 일정이 남아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가라앉는 기분을 간신히 추슬러 표정 관리를 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밥을 먹어도, 차를 마셔도 체기가 돈다. 어찌 수습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 시계는 그이가 아들을 박사로 키워냈다고 사준 것이다. 명품은 처음으로 받아본 G사의 고가 시계다. 애지중지 아끼느라 몇 번 착용해 보지도 못했다. 속상하여 나를 자책한다. 왜 그렇게 어리바리한지 모르겠다. 그이가 반지를 찾아준 게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또 일을 쳤으니 사고뭉치인 셈이다. 분명 치매까지 들먹이며 무어라 할 텐데 걱정이었다. 그이가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자 철렁이던 파도가 더 세게 부딪혀 왔다.

일을 마치고 온 그이를 붙잡고 다짜고짜 고해성사하듯 이실직고를 했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하지 않는가. 그가 놀라지도 않는다. 이제 자주 있는 일이라서 무뎌진 탓인지 반응이 없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부메랑으로 돌아올 핀잔이 웬일인지 조용했다. 바짝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들려오는 그이의 말에 눈물이 차오른다.

“당신 것이 안될려니까 그렇게 된 거지. 신경 쓰지 마. 내가 다음에 더 좋은 걸로 다시 사줄게”

밤새 잠을 설쳤다. 둘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어서 아침에 나섰다. 여느 때처럼 비상계단을 내려오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물체가 있었다. 내 시계다. 반가움에 소름이 돋았다. 속앓이를 하다가 포기한 나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찾아도 없던 시계가 난간에 얌전히 올려져 있다. 누군가 주워 거기에 놓았는가 보았다.

꼬박 하루가 지난 지금에 주인인 나의 눈에 띈 것이, 아무도 가져가지 않고 남아있었다는 것 또한 놀랍다. 기쁨은 감동이 되는 순간이다. 아마 관리사무실에 갖다 주지 않은 데는 번거로움이 싫어서였지 싶다. 누군지 알았다면 감사의 인사로 복잡해질 상황이 덕분에 깔끔하다. 오히려 나에게는 잘된 일인지 모른다. 직접 전하지 못할 감사의 인사를 어찌할까 고민 끝에 쪽지로 써서 층계난간에 붙여놓는다.

아무리 힘들고 각박하다 해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달려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고 남을 위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화마 속으로 뛰어드는 의인(義人)이 있는 세상. 순간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되는 세상. 온몸에 전율이 인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아직 살만한, 살아볼 만한 세상임을 뼈속으로 느낀다.

또 오늘로 올 내일이 기대로 설렌다.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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