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노동교육'의 실종
`노동'의, `노동교육'의 실종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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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밥벌이의 명령이 준엄한 것이라면, 삶의 존엄은 엄연하다.' 어느 글을 읽다가 마주친 문장에서 한참을 헤어나지 못했다.

`밥벌이'는 먹고 사는 일과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뿐만 아니라, 딸린 식솔의 건강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은 `노동'이다. 그러므로 `노동'은 `조금의 타협함 없이 매우 어렵고 엄'한 것이다.

`엄연하다'는 말은 대체로 `생각할 사이도 없이 매우 급작스럽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그러나 삶의 존엄을 수식하는 `엄연'은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또는 `엄숙하고 점잖다'는 무거운 뜻이 있다. 그러므로 `노동'은 `준엄'한 것이며 `존엄'으로의 가치가 `엄연'한 것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노동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년퇴직이라는 제도에서 해방되지 못한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 상당수가 이미 노동의 세계에서 실종되고 있으니, 사지 멀쩡한 그들의 먹고 살아남는 일이 궁금하고 위태롭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일생의 노동에서 도태되는 일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사회는 갈수록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늪으로 빠져들고 있으니 `존엄'하고 `엄연'한 세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노동'을 기꺼이 감내하며 그로 인해 흘린 땀에서 보람과 기쁨을 찾던 젊은 날의 추억이 절대 현실로 돌아올 수 없는 것처럼.

미국의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 처음 번역 출간된 것은 20세기인 1996년의 일이다. `노동'이 사라질 위기를 경고한 이 책의 첫인상은 낭만적이고 이상적이었다. 기계가 인간의 모든 수고를 대신하는 기술 유토피아의 세상이 오면 사람들은 `일'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그러나 영영 멀어지고 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자유로운 노동의 길로 인도되는 대신, 한 가지 `노동'으로는 먹고 사는 일을 지탱할 수 없는 나락으로 오히려 빠지고 있다. 인간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며, 양극화는 소득과 일자리의 질과 안정성에서 회복될 수 없는 간극을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먹고 사는 일에 간절한 이들에게는 위험의 외주화와 열악한 일자리 환경, 파리 목숨만도 못한 해고의 위협에서 헤어날 수 없으니 `노동의 존엄' 운운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정권이 바뀌면서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진보와 보수단체의 갈등이 공청회장을 폭력과 욕설로 방해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이날 2022 개정 교육과정 정책연구진은 `생태전환교육'과 `일과 노동의 의미와 가치' 항목이 삭제되고 `민주시민교육' 관련 내용은 줄어든 총론 시안을 공개했다.

`노동'은 자본주의의 태동과 더불어 인간과 함께 성장해 온 덕목이다. `정의로운 전환'으로 상징되는 `생태전환교육'의 필연성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당연히 지향해야 할 가치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마찬가지로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생태적 가치의 중요성을 설득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마찬가지로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존엄성을 중심에 두지 않는 교육은 결국 사람들의 삶을 귀한 가치로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 제발 일하다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간절함이 `나만 아니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우연을 기대하는 사회로 진행되는 한 희망은 없다.

교육에서 `노동'을 실종시키려는 기도는 자본의 탐욕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 지배자본은 소득불균형의 최정점에 위치한 많이 가진 자들의 것이며, 그들은 한결같이 지배 엘리트의 계급에 해당된다.

`노동'은 내 것이 되어야 한다. 일은 스스로의 책임을 갖고 성실하게 함으로써 긍지와 보람과 기쁨을 주어야 하며 그런 `노동'의 댓가로 얻은 재화를 통해 먹고 사는 일의 존엄함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배 엘리트와 자본의 탐욕적 이익이 기승을 부리는 한 그 이익에 반하는 내용은 제대로 알려주는 일이 없다. 교육의 가치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꼴인데, 그런 세상에서 낮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권리조차 내 것인지 모르고 산다. 자본과 엘리트는 그렇게 세상을 속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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