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 친구에게
가을 밤 친구에게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9.0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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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가을은 상념 외로움 그리움, 이런 단어들과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무슨 계절적 특징이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의 정서적 직관은 무시하기 어렵다.

고요한 가을 밤은 특히나 잠들기가 어렵다. 당(唐)의 시인 위응물(韋應物) 역시 가을 밤에 쉽게 잠들진 못하였다.


가을 밤 친구에게(秋夜寄邱員外)

懷君屬秋夜 (회군촉추야) 그대 그리운데 마침 가을밤이라서
散步詠凉天 (산보영량천) 이리저리 거닐며 서늘한 하늘을 읊조리네
空山松子落 (공산송자락) 텅 빈 산에 솔방울 떨어지니
幽人應未眠 (유인응미면) 산속 친구는 잠들지 못할 거네

봄, 여름을 지나면서 잠잠하던 시인의 그리움 증세가 갑자기 도져 나왔다. 갑자기 도진 병에 원인을 몰라 하던 시인은 때가 마침 가을 밤인 것을 깨닫고는 이내 수긍하였다.

시인에게 그리움은 일종의 계절병이었던 것이다.

잠이 올 리가 없는 시인은 침상에 눕는 대신 이곳저곳을 걷기로 했다.

부쩍 차가워진 날씨에 감회가 절로 일었고, 그것을 시로 읊조리기도 하면서 가을 밤 분위기를 만끽하였다.

그러다가 아까 불현듯 그리워졌던 친구가 다시 떠올랐다. 그 친구도 시인과 마찬가지로 잠 못 이루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유는 그리움증이겠지만, 시인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훌륭한 구실을 찾아 붙여 준다.

친구가 기거하는 곳은 깊은 산 속인지라 필시 소나무가 근처에 있을 테고, 가을이 되었으니 솔방울이 떨어질 것이다.

아무도 없는 가을 밤 깊은 산 속은 고요하기 그지없을 테고, 그러니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좀 크게 들리겠는가?

바로 그것이다. 시인은 가을 계절병인 그리움 증에 밤잠을 설친 게 아니었다.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잠 못 들고 있을 것이라고 시인은 너스레를 떤다.

가을 밤 깊은 산 속의 고요함과 거기 머물고 있는 사람의 외로움을 절묘하게 나타낸 시인의 솜씨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그것이 고향이건 가족이건 친구건 잊고 지냈건만, 가을을 맞으면 영락없이 그리움이 되살아난다. 겨울을 참으며 꽃눈으로 있었던 봄꽃처럼 말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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