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연꽃
하얀 연꽃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8.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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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삼복 무더위에 인간들을 포함한 삼라만상들은 힘들고 지친 모습을 띠게 마련이다. 이런 가운데 유달리 생기가 도는 것이 있으니 바로 연꽃이 그것이다. 연꽃은 6월쯤부터 한여름 내내 무더위를 비웃는 도도한 자태를 뽐낸다. 특히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여 불가의 수행을 상징하는 꽃으로 받들어 지는 귀한 몸이기도 한 연꽃, 그 중에도 하얀 것은 순진무구한 진리의 세계 그 자체이다.

당(唐)의 시인 육구몽(陸龜蒙)은 이러한 백련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 내었다.


하얀 연꽃(白蓮)

素蘤多蒙別艶欺(소위다몽별염기) 흰 꽃은 보통 화염한 꽃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니
此花端合在瑶池(차화단합재요지) 이 꽃은 응당 신선 세계의 연못에 있어야만 어울리겠네
無情有恨何人覺(무정유한하인각) 정은 없고 한은 있으니 어떤 사람이 깨닫겠는가?
月曉風淸欲墮時(월효풍청욕타시) 달 뜬 새벽 맑은 바람 불 때가 떨어지려는 순간임을

흰색은 무채색이라서 붉고 노란 유채색에 비해 화염함이 덜하다. 그래서 하얀 연꽃은 화염한 빛깔의 꽃들에게 무시당하곤 하는데, 이것 자체가 세속적 관념에 찌든 인간 세계의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신선 세상의 연못에나 있을 법한 귀한 몸인데 어쩌다가 인간 세상에 나서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자못 심각한 어조로 한탄한다. 신선 세계에나 있을 법하지만, 실제로는 인간 세계에 피어났으니 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시인은 정(情)은 없으나 한(恨)은 있다고 설파한 것이다. 화염하지 않은 것에 결코 연연하지 않지만, 영원히 피어 있지 못하고 져야만 하는 것이 한이라면 한이다.

그렇다고 이 꽃이 보통의 꽃들처럼 아무 때나 지지는 않는다. 달 밝은 새벽 맑은 바람 불 때가 이 꽃이 지려 하는 때임을 알아채는 사람은 없다고 시인은 말하는데, 정작 이것을 알아챈 시인은 사람이 아니고 신선이란 말인가?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진흙 속에서 순진무구함을 품고 있는 하얀 연꽃의 자태에 매료되곤 한다. 세속적 관념과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인간들에게 세속과는 거리가 먼, 그러면서도 도리어 싱싱한 생명력을 뽐내는 백련(白蓮)은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기품 그 자체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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