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은 화단
마음에 담은 화단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2.08.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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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누군가 내게 지금까지 살아 온 길에 대해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

사는 동안 쉼 없이 시련과 부딪치며 알 수 없는 성과를 위해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 속이다. 그런 사람들이 굳게 믿고 의지한다는 말은 서로 같은 마음으로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나마 나는 그 어설픈 신뢰를 평생 지키며 살아왔다.

벌써 십 년이 지난 일이다. 한창 사업이 잘될 때 빚 좀 갚아야지 할 무렵, 업체 간에 담합을 거부하자 엉뚱하게 역풍이 불어왔다. 한국에 왔을 때는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었고 간부들은 이직을 알아보며 어수선했다. 정말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모든 게 한순간이었다. 결국, 회사를 정리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억울하고 부당한 시련에 원망이 생겼다. 평생 부조리에 대한 적대심으로 살아 온 나였다.

그때마다 거짓과 진실을 오가며 싸웠고, 나는 신을 버렸다. 신이 있다면 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게 될 상황이기에 더욱 신을 부정했다.

다행히 회사가 보유한 땅이 팔렸다. 순간 가증스럽게 신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래, 잘 살아왔어! 내 주제에 이만큼 살아왔으면 됐어!”라며 위안하며 변명했다. 모든 결과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집을 수리하면서 평생 해 보지 못한 화단을 조성하자는 생각을 했다.

담장 밖에는 8평 남짓한 화단이 있었고, 마당에는 꽤 넓은 화단을 만들 수 있었다. 나비와 새들이 날아드는 풍광이 있는 화단을 만들고 싶었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나니 평화로운 마음과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잃어버린 시간은 인생에 자양분이 되었다. 기억의 짐이었던 불안, 분노, 미래, 욕망을 다 버리고 남은 게 있다면 화단에 심어놓고 드러내는 내 모습이 어떤지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다.

화초를 가꾸고 푸성귀를 심을 요량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아침마다 화단에 물을 주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막 쏟는 초록의 끝을 보면 설렌다. 얼마 전 백일홍과 금잔화 꽃씨를 심었다. 그리고 흙을 얇게 덮고 물을 주었더니 땅 껍질을 뚫고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서로 십자형 군대를 이루며 부딪치고 일으켜 세우느라 애쓴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 미소가 온 화단에 돌아다닌다. 비로소 온전한 느낌이다.

이제 내 마음에도 연두처럼 파란 새싹이 자라고 있다. 나의 마음 화단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은 아무도 모르게 자리를 잡아가듯, 내 마음 화단에 꽃이 피었다. 야무지게 말이다. 화단을 잘 꾸미려면 햇빛, 습도, 밤의 길이, 환경에 맞춰 일구고 돌봐야 한다. `일군다.'라는 말은 땅을 갈거나 밭일을 한다는 뜻이고, `돌보다'라는 말은 보살피고 보호한다는 사전적 의미다. 내 삶에 대해 잘 꾸미려 무엇을 했는지 가끔 생각해 본다. 나는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았고 굽히지도 않았다. 내 방식으로 어설프게 살아왔다. 어설픈 신뢰와 부조리에 대한 적대심 말이다. 그러나 꽃의 이파리는 곧게 오르다 가볍게 휘어진다. 꽃으로 배운다. 겸손한 마음으로 깨달음에 대한 예의를 다해야겠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걱정하지 않는다. 꽃과 유기물처럼 살아갈 것이다. 요령이나 사는 법도 필요 없겠다. 마지막 화단에 삶을 심어가며 갈무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느리게 정리하며 몸과 영혼이 치유되도록 삶을 사랑하자. 허리를 굽혀 화단을 살피고 돌본다. 노인의 허리가 굽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해가 스며들지 않을 시간에 서 있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화단에서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잘 보고 듣고 물을 줘야겠다. 소중한 나와 사랑에 대해 게을리 하지 않으며, 화사한 미소와 넉넉한 좋은 관계를 맺자. 다가올 아침은 아침으로 족하다. 내일은 어떤 소식이 있을까?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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