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시차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2.08.1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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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입추가 지났다. 입추는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뜻을 가진 절기로 계절이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다. 입추가 지난 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지만 가을은커녕 늦더위가 한창이다. 한참 더운 낮에 사람들은 만나면 `입추가 지났다는데 너무 덥네요' 라든가, `가을이라더니 말만 그런듯해요' 등등 절기와 기온이 다르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왜 입추인데 더울까?

입추에 대해 백과사전을 검색해보면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로서 음력 7월 초순, 양력 8월 8~9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35˚에 위치하며,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대로, 이날부터 입동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고 설명되어 있다. 사실 24절기는 옛 중국 사람들이 그들의 천문학 지식을 동원하여 태양의 황경이 0°인 날을 춘분으로 하고 15° 간격으로 24개로 나눈 후 분기마다 기후를 나타내는 용어를 하나씩 붙인 것이 그 유래다. 설이나 추석은 음력으로 정하기 때문에 매년 양력의 날짜가 변하는 것과는 달리 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정한 것이기 때문에 양력으로 매년 같은 날 또는 간혹 하루 정도 차이를 두고 돌아온다.

앞서 살핀 것처럼 24절기의 명칭은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지방 즉 베이징(北京), 허베이(河北), 톈진(天津),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에 걸친 지역의 기후를 잘 나타내도록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기후와는 약간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한다. 다음 주인 8월 23일이 처서인데, 처서쯤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 본격적인 입추가 되지 않을까 싶다.

24절기의 기준이 화북지방인 것도 고려해볼 만 한 것이지만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은 우리가 어릴 적 배운 태양의 위치(고도)와 기온의 차이에 대한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때는 국민학교였지만 운동장에 나가 종일 실험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과학 실험은 시간 내에 마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매시간 나가서 태양의 고도와 그림자의 길이, 그리고 기온을 재서 기록했던 기억이 난다. 태양의 고도는 12시경이 제일 높았고, 그림자의 길이 역시 12시경이 제일 짧았다. 그런데 기온은 오후 2시경이 가장 높았다.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은 때와 기온이 가장 높은 때가 시차를 갖는 것이다. 이 시차의 이유는 태양에 의해 지표면이 데워지고, 데워진 지표면에 의하여 공기의 온도가 높아지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선생님은 설명해 주셨었다.

이를 대입해보면 입춘인 2월 초순에 봄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현상도 설명될 수 있다. 봄을 느끼려면 태양이 이미 봄의 고도에 올랐더라도 지표면이 데워져야 하고, 데워진 지표면에 의하여 공기가 봄의 기온으로 바뀔 시간적 차이가 필요한 것이다. 입춘에서부터 실제 봄까지 데워질 시간, 한 달이 필요하듯, 입추에서 실제 가을까지는 식을 시간, 한 달이 필요한 셈이다.

사람살이도 비슷해 보인다.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말은 삼척동자도 알 만큼 모두에게 알려진 말이지만 그 말을 진짜 의미를 깨달을 때쯤 정작 부모님께서는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살아생전 다하라는 그 효심이 시차를 두고,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뜨겁게 가슴을 친다. 어쩌면 선생님에 대한 마음도 비슷하다. 그 여름 운동장에서 열심히 과학수업을 하던 그 선생님은 지금 내 곁에 없지만 그 실험과 그때 배운 그 지식이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왔듯 그리고 이렇게 반백의 제자가 당시 20대 초반의 선생님의 고마움을 생각하듯 은혜의 시차 역시 비슷한 듯하다.

진짜 가을이 오기 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부모님께든, 선생님께든, 고마운 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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