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짐에서 세상 읽기
정글짐에서 세상 읽기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2.07.2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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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글 한 줄 쓸 수 없고 책 한 권 제대로 읽히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는 초하(草河)이다.

눈을 뜨면 주변이 온통 초록 도서관이다. 퇴고 불필요한 깔끔한 초록 문장들을 읽느라 책장이 달팽이처럼 넘어가는 통에 긴박하게 독서 감상록을 출력했다.

인문학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라 카페로 가는 중이다. 오래된 상수리나무 숲 사이에 위치한 베이커리 카페에 들어서자 바람 스치는 소리가 아쟁 음처럼 튕긴다.

이번 독서 토의 주제는 미국 시애틀에서 활동하는 심리상담사 류페이쉬안의 책 `회복력 수업'이다.

`매 순간 넘어져도 기꺼이 일어나기 위하여'라는 부제로 심리를 다룬 자기계발서다.

통유리 가득 환삼덩굴이 액자처럼 드리운 귀퉁이에 자리를 잡으니 산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차 한 잔을 미리 주문하고 책장을 다시 넘기는데 붉게 밑줄 그은 부분이 보인다.

`이제 커리어는 사다리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터에 있는 정글짐 형태로 발전한다. 사다리는 위로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앞에 누군가 가로막고 있으면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글짐은 다르다. 목표한 지점까지 갈 방법이 여러 가지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접할 수 있다.'

앞으로 MZ세대가 갖는 평균 직업이 12개라고 할 때 기존의 사다리 공식은 이제 고루한 잣대이다. 정글짐 공식의 다양한 창의력 사고가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도 자신을 키운 건 동네 도서관이며 혼자 있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혼자 책 읽고 사유하며 키운 사고력이 남들이 가지 않은 잡초 무성한 길을 걷게 한 동력이 된 것이다.

내 삶에도 평균 독서가 차지하는 시간이 제일 높다. 일상의 비릿한 시간이 빠져나가고 세상의 골목마다 가로등 켜지는 어둠이 밀려오면 보면대를 펼치고 독서삼매에 든다.

내 삶의 이상적인 루틴이며 가장 안온한 시간이다. 수업 준비 차 읽어야 할 책도 읽고 싶은 책도 많다 보니 가급적 시간을 허투루 쓰진 않는다.

글을 쓰는 일이 세계 내 존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차원이라면 독서는 삶의 가치를 고양하려는 물길 트는 작업이며 수업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이고 학생들에 대한 존중이며 선생으로서의 기본자세이다. 그래서 언제나 글 쓰는 행위와 독서의 교집합은 `생각이 건강한 자기'에 닿는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쓴 사이토 다카시는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강조했다. 세상 모든 위대한 창조물은 대부분 혼자 있는 시간에 태동했다.

나도 감정선 높은 시인이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주먹만 한 공허가 눈을 뜬다. 그러나 밀려오는 고독과 공허를 애써 물리진 않는다. 시가 오면 시로 쓰고 공허가 깊어지면 책장을 편다. 민낯의 나를 만나 감정이 들려주는 몸 상태를 돌보며 회복하려는 사고 탄력성을 지닌다.

`긴 하루 끝에 좋은 책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날은 더 행복하다. (Just the knowledge that a good book is awaiting one at the end of a long day makes that day happier)' 미국의 소설가 캐슬린 노리스의 말이다.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여 자발적 외딴 방에서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만나는 시간은 정글짐 사유로 확장하는 가장 그윽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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