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고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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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2.07.2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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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고인(古人)의 속임수에 헤매이고 고뇌한 이

예로부터 그 얼마인고?

큰 웃음 한 소리에

설리에 도화가 만발하여

산과 들이 붉었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괴산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7월의 끓는 하늘 아래 붉은 열매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탁마할 공안은 격외도리형 공안인 무문관 제10칙 청세고빈(淸稅孤貧) 3.입니다

앞서 보신 바와 같이 청세라는 스님을 보면 어찌 보면 기백이 넘치는 모습인 듯합니다. 그런데 청세 스님은 조산 선사께 자신의 경지를 외롭고 가난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외롭다'는 상대성을 떠난 `절대성'을 그리고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이 `무소유'(무일물, 무아)의 경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이 공안의 초입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또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공안에는 청세스님이라 불렀다고 하지만 한문 원어에는 `세사리'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사리'에서의 `세'는 청세를, 그리고 사리는 아사리(acharya)에서 유래된 말이고, `acharya'는 뛰어난 스님에 대한 존칭어입니다. 이렇듯 이 공안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면 이 공안에 접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을 겁니다.

이 대목은 청세 스님 자신이 아무리 진리를 깨우쳤다고 한들 “저도 좀 구제해 주십시오.” 라고 하는 말밖에 아닌데 조산 선사에게 선적인 도발을 한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때 조산 선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청세 스님을 부릅니다. 선사가 “세사리” 라는 극존칭으로 청세 스님을 부를 때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네” 라고 대답하였던 겁니다.

조산이라는 거목으로부터 깨우침을 인가받고자 들이대는 청세 스님에게, 조산 선사께서는 “그대는 고승입니다.” 라는 호칭으로 청세 스님의 아상을 아프게 꼬집었던 겁니다. 그런데 청세 스님이 이를 무심결에, “네” 라고 대답해버리자 이 진검승부는 싱겁게 끝나버리게 됩니다.

깨우친 사람이란 몸과 마음의 공성을 모두 통각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상으로서의 나는 의식이라는 거울에 비친 것이며, 근원으로서의 나란 순수한 의식 자체이면서 절대적 존재란 마치 앎과 하나가 된 빛과도 같습니다. 깨달은 이는 한마디로 모든 개념화와 대상화를 멈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깨우친 사람은 자신이 깨우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개체로서의 깨우친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조산 선사는 청세 스님이 깨우침과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던 겁니다. 앎이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앎과 존재가 서로 다르다면 그것을 깨우침이라 이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격외도리형 공안인 무문관 제10칙 청세고빈(淸稅孤貧)4.를 계속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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