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문화 연구의 중심은 사람, 그리고 관계
민속 문화 연구의 중심은 사람, 그리고 관계
  • 김은정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 연구원
  • 승인 2022.07.17 18: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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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김은정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 연구원
김은정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 연구원

 

“어머니, 아버지! 저희 왔어요!”

마당에 들어서며, 얼굴을 뵙기도 전에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먼저 건넨다. 누에고치 수매 현장 기록화 촬영 이후 3주 만에 뵙는 두 분의 얼굴에 농사일의 고단함이 베어 나온다. 누에농사는 보통 한 달 농사라 한다. 봄에 치는 누에를 춘잠(春蠶), 가을에 치는 누에를 추잠(秋蠶)이라 한다. 춘잠 시기는 농가별의 사육 환경과 목적에 따라 다른데 올해는 대략 5월 18일부터 6월 23일 사이 진행되었다.

근황을 여쭤보니 춘잠이 끝난 후에도 시기적으로 며칠씩 늦어진 다른 농사일 때문에 무척 바쁘셨다고 한다. 더구나 추잠시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뽕밭 관리에 잠실 청소와 잠구(蠶具) 정리까지 해야 되니 무더위에 작물 말라가듯 두 분도 살이 빠지신 모습이었다.

연구원에서는 문화재청과 보은군의 지원을 받아 미래무형문화유산 발굴·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보은 뽕나무재배와 누에치기'의 기초학술조사와 기록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던 양잠의 무형문화유산으로서 가치와 의미에 다가가기 위해 연초부터 필자는 충북의 양잠 농가를 다니며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마치 친정에 간 듯 “어머니, 아버지” 호칭을 부를 수 있었던 것도 반년 넘게 쌓은 `라포(Rapport)' 덕분이다.

관계라는 의미의 `라포'는 공감대 형성, 상호신뢰관계 등으로 이해하면 쉽다.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현장조사는 돌밭을 걷는 것과 다름없다. 어느 돌에 채여 넘어질지 모른다. 더구나 기록화처럼 오랜 시간 동안 참여관찰을 해야 하는 현장이라면, 한 발짝 내딛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상호간 긍정적이며 긴밀하고 조화로운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일이 가능하다. 그것이 필자가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민속학 현장조사 연구의 모습이다. `무형문화유산(무형문화재)' 분야도 마찬가지다. 근래의 정책방향과 시대 변화에 따라 범주와 대상의 경계만 다를 뿐 조사·연구 과정에 앞서 관계형성이 기본이 되어야 함은 변함이 없다.

사람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기에 현장 경험이 쌓여도 난처한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현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주요 제보자임에도 인터뷰를 거절당하거나 이야기가 쉽게 풀리지 않아 셀 수 없이 찾아가야 할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해결 방법은 역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얼마나 관계 형성이 잘 되었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마음으로 다가간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새 남에서 이웃이 되어 호칭에 정이 묻어난다.

올해 진행된 양잠 농가 기록화 현장에서는 그런 일도 있었다. 아흔을 훌쩍 넘긴 어머님 댁의 현관문 고정 지지대가 말썽이었다. 야윈 손으로 무거운 돌을 옮겨 괴여 놓는 모습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천 원짜리 고정 지지대를 사다 교체해 드렸더니 앓던 이 빠진 듯 좋아하신다. 그 후로 필자는 어머님의 막내 `딸내미'가 되었다. `딸내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신 어머님은 이것저것 자료가 될 만한 것들을 찾으실 때마다 먼저 연락을 주시기도 하고, 자료요청을 드릴 때마다 아낌없이 내어주셨다.

필요에 따라서는 농가의 일손을 도우며 현장조사를 병행하기도 한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을 보고도 멀뚱멀뚱 서서 필요한 것만 약탈하듯이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땀범벅은 기본에 풀도 뽑고, 비료도 나르고, 눈치껏 심부름도 한다. 이런 현장 상황을 두고 3D업종이라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관계 속에 사람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관계 형성이 잘 되어도 녹록지 않은 게 현장조사이다. 그럼에도 현장에 나가는 이유가 있다. 그곳에 민속 문화 연구의 중심인 `사람'이 있고, 그 관계 속에 배움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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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순 2022-07-18 15:33:41
한편의 다큐를보는듯!!영상이 머리위를 스침니다.
그냥 얻어지는 지식은 없겠지요. 어쩌면 잊혀질지도모르는 우리의 역사를되세김질하는 김은정 연구원님의 노고에 박수와 지지를 보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