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은 멋져, 하지만 파랑도 멋져
빨강은 멋져, 하지만 파랑도 멋져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2.07.03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교실 앞문과 뒷문으로 연신 학부모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코로나 사태 3년 만에 오픈된 방과 후 공개수업을 참관하기 위해서다. 이전보다 특이한 것은 부부 동반 참관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독서 논술 공개수업 주제로 저학년은 캐드린 오토시의 ‘ONE-1’을 텍스트로 ‘집단 따돌림 지혜롭게 해결하기’로 잡았고 고학년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텍스트로 ‘어린 왕자가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와 일곱별의 상징’을 다뤘다. 자녀를 한둘밖에 낳지 않는 시대이고 보니 부모들의 관심도 매우 높다. 당일 주제가 ‘집단 따돌림 지혜롭게 해결하기’ 때문인지 학부모와 학교 관리자들 참석까지 겹쳐 인산인해였다.

대개 작가는 자신의 중심 의도를 책 제목으로 설정한다. 책을 읽기 전 제목과 표지를 오래 살펴본 후 어떤 내용인지 추측해보는 시간으로 오프닝을 열었다. 공부를 제일 잘하는 이야기, 성격이 좋아서 인기가 1등인 이야기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조용히 듣고 있던 논술반 2년 차 3학년 호영이가 “공부 1등 이야기는 아닐 거야. 선생님은 그런 주제를 안 다루셔, 내 생각에도 공부 1등보다는 인성 점수 1등 이야기일 것 같아. 아니면 착한 일을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든지.

5분 정도 끌었을까. 빨리 이야기 들려달라고 재촉하는 눈빛에 책을 펼쳤다. 책 표지로 보아 이야기 속 주인공은 파랑이다. 파랑은 조용한 아이다. 그런데 늘 화가 많은 빨강은 얌전한 파랑을 괴롭히기 일쑤다.

“빨강은 멋져, 하지만 파랑은 멋지지 않아.”

그러나 주변 색인 노랑, 초록, 자주, 주황은 그 둘 사이의 문제를 알면서도 묵인한다. 그때 숫자 1이 나타나 빨강의 행동을 제지하고 숫자놀이로 지혜를 발휘한다. 1이 빨강에게 ‘NO’라고 단호하게 말하자 1의 용기를 따라 다른 색들도 참여하면서 2, 3, 4, 5 점점 숫자로 변한다. 그러자 빨강의 괴롭힘을 묵묵히 견디던 파랑도 입을 연다.

“빨강은 멋져, 하지만 파랑도 멋져”

지혜로운 반론으로 파랑도 6으로 변하고 빨강의 위력은 점점 줄어든다. 1의 관용으로 빨강도 숫자 7로 변하고 모두는 대열을 이루며 수평으로 펼쳐진다.

구연동화를 마치고 네 명씩 짝을 지어 핑퐁 토의하며 활동지를 정리하는 시간이라 부모들도 자유롭게 돌아보며 학생들의 토의 장면을 지켜봤다.



첫째,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자주, 주황이 서로 다른 색인 것처럼 우리도 서로 다른 사람임을 이해해야해.

둘째, 대부분 우리도 노랑, 초록, 자주, 주황처럼 행동하잖아. 1과 같은 용기가 필요해.

셋째, 빨강이의 행동에도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관심 두고 접근해 봐야 해.



교실 안이 시끌벅적하다. 모두 조금씩은 경험이 있는 듯하다. 한 번씩은 빨강도 파랑도 된 적이 있단다. 그런데 1이 된 적은 없다니 괜한 참견으로 자기까지 피해 보는 게 싫다는 이유이다. ‘그 대상이 나라면’ 빨강과 파랑이 되어보는 두 가지 역할 놀이 활동은 모두를 숙연케 했다. 거리를 좁혀보면 체감온도도 다르다. 공개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정리하는데 맨 뒤 책상에 편지가 놓여있다.

“우리 반의 빨강이가 논술 반에서 맨 앞에 앉아 진지하게 토의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 아이의 다른 모습을 발견한 좋은 수업이었네요.”

학부모인 줄 알았는데 교실 담임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빨강도 파랑도 모두 소중한 존재들이다. 다만 빨강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좀 더 관심을 두고 그 원인을 치유해야 한다. 그것이 입체적으로 보면 억울한 파랑들을 줄이는 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