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친구야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2.06.26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친구들과 칠순 여행을 다녀왔다. 함께한 12명 친구 중에 건강한 친구도 있지만, 협심증으로 심장이 좋지 않은 친구, 천식으로 호흡이 곤란한 친구, 당뇨병이 있는 친구, 다리가 불편하여 걷기 어려워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 덕에 여행하게 되어 행복하다. 억수야! 건강할 때 건강 잘 챙겨라”는 친구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친구들과 칠순 여행을 하면서 롭 라이너 감독의 「버킷리스트」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노배우 잭 니콜스와 모건 프리먼의 안정된 연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삶의 끝자락에서 만나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었다. 그리고 실행에 옮길 때마다 하나씩 지우면서 삶을 정리해 나가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면서 즐겁기도 했다. 영화의 그들처럼 호화롭게 여행을 하면서 스카이다이빙을 즐기거나 에베레스트 산을 오를 필요는 없지만 나는 그냥 친구와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 두 사람의 깊은 우정에 감명받았다. 그리고 나는 나와 함께할 친구가 많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서로 인생에 참된 기쁨을 찾아주는 친구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을 같이할 친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과 3박 4일 동안 함께하면서 불편한 몸을 추스르며 친구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동안 친구의 아픔을 몰랐다. 돌아보니 나를 방어한다는 알량한 아집의 빗장을 걸고 나의 아픔만 생각했다. 내색 없이 배려하는 친구의 모습에서 영화 속 친구처럼 그런 친구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는 그동안 살아온 삶의 여정이 힘들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세월을 잘 견디며 살아 냈다. 우리가 살아온 시절은 격동의 세월이었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어느 하나 우리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껏 꿋꿋하게 잘 견디어 온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어느 친구가 좀 더 잘 살면 어떻고 어느 친구가 좀 더 못 살면 어떠하랴. 이제 우리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 건강에 다소 문제가 있어도 곁에 있어서 그냥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심장 협심 수술을 권하는 의사와 가족의 의견을 무시하고 고집스레 수술하지 않는 친구야! 웰다잉을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는 친구의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나이가 들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기력이 쇠약해 몸이 고장 나는 것은 당연하다.

친구야! 영화처럼 죽기 직전에 꼭 리스트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변화를 위해 리스트를 만들어 실행하면서 산다면 후회 없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실행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여 더하거나 빼면서 삶을 즐기며 살았으면 한다.

친구야! 우리가 살아온 날이 벌써 칠십 년 세월이 흘렀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인 줄 알지만 이제야 절실히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인도의 말에 “친구란 자기의 슬픔을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친구란 우리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지고 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추억을 함께 공유한 친구는 나에게 그냥 옆에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늘 나를 걱정해주고 이해해 주어 고맙다. 앞으로도 진정으로 마음 다하는 그런 친구로 오래오래 삶의 여정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친구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