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그리고 행운
행복 그리고 행운
  •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2.06.2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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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터벅터벅 둘레길로 산책을 나왔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유월, 게다가 가뭄까지 겹친 날씨는 온갖 나무와 식물을 가만두지 않았다. 모두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뜨린 체 축축 늘어져 곤두박질이다. 얼마나 가물었는지 밭뙈기마다 군데군데 스프링클러가 연신 물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짓밟히고 짓밟혀도 죽지 않는다는 잡초조차도 이 가뭄의 속수무책인지 잘 자라지 못해 모두 시들시들 초주검이다.

한참 둘레길을 돌다 보니 인적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빈집이 먼발치 언듯 언 듯 보인다. 온기 없는 자그마한 주택 근처를 서성이다 대문 앞에 섰다. 어렴풋이 봐도 쾌 오래도록 비어 있었는지 찬기운이 돈다. 마당 가득 무더기로 활짝 핀 클로버, 토끼들이 잘 먹는다 하여 토끼풀이라 하는데 마치 부러 기른 듯 마당을 빼곡하게 꽉꽉 메웠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놓인 돌다리조차도 모두 삼켜버릴 기세로 다복한 하얀 꽃을 무성하게 피운 클로버는 이 가뭄에도 꿋꿋하게 만개했다. 뿐인가 꿀벌들도 제 할 일들을 하느라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열심히 이 꽃 저 꽃 분탕질이다.

그리스신화에 의하면 꿀벌들이 독이 있는 풀들이 너무 많아 좋은 꿀이 있는 꽃을 찾기가 힘들다. 쉽게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꿀벌들은 제우스신에게 간청을 드렸다. 제우스신은 `번쩍이다'와 `하늘'을 뜻하는 어근에서 비롯된 것으로 빛나는 하늘의 신을 뜻한다. 하늘의 신이신 제우스는 커다란 붓에 흰 물감을 묻혀 동그라미를 그려 어떤 꽃에 표시해 주었는데, 그 꽃이 바로 클로버라 한다. 우리가 잡초라 여기며 무심하게 짓밟았던 꽃이 꿀벌에겐 양식이었고 좋은 꿀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클로버, 네 잎 이파리를 찾을 요량으로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무성한 토끼풀을 기웃기웃 거리며 뒤적였다. 나폴레옹은 전쟁 중 클로버이파리는 세 개인데 네잎클로버가 눈에 띄어 네잎클로버를 따려고 앉았다. 때마침 적군이 쏜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가 나폴레옹이 운 좋게 살아나게 되었고 행운이라 여겼다. 그 뒤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이파리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거다. 하트 모양을 닮은 클로버이파리들, 한가운데로 흰 줄이 선명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 하트 모양을 더 강조하는 이른바 토끼풀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이파리를 열심히 뒤적이는 내 모습에 어이없게도 절로 쓴웃음이 인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그러나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우리가 소망하는 바로 `행복'이다. 우둔하게도 행운을 찾으려 세잎클로버인 행복을 발로 꾹꾹 밟고, 손으로 헤치면서 행운이 뭣이라고 행복 속에서 행운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이 조금도 꾸밈없이 천연덕스러운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세 잎 클로버의 행복, 너무 가까이 있어 눈에 보이지 않았던 행복대신 클로버 꽃을 한 아름 꺾어 예전처럼 꾹꾹 여며 꽃목걸이도 만들고 꽃팔찌, 꽃반지도 만들었다. 가운뎃손가락에서 소복하게 피어난 꽃반지, 금이 아니면 어떻고 다이아몬드가 아니면 어떠랴 오늘만큼은 다이아몬드보다도 훨씬 더 화사하고 여쁘게 맘을 흔들어 놓는다. 행운이라 일컫는 네 잎을 가진 클로버, 찾기가 어려운 것처럼 행운은 복권 당첨처럼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약하기만 사람들은 먼 곳에 있는 행운을 잡으려 손끝에 있는 행복을 짓밟는 아둔함이 있다.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엮어가는 세월, 수많은 행복 속에서 행운을 찾던 나, 미적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행복은 손끝에 있음에도 멀리서만 찾고 있었는데 소소한 일상에서 주는 이 행복한 시간. 유월의 햇볕 아래 추억과 낭만이 내 가슴속에서 조금씩 영글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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