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랑박선(螳螂搏蟬)
당랑박선(螳螂搏蟬)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6.1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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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무언가 한다는 건 세상의 질서에 귀속된다는 것인데 세상의 질서가 서로를 먹는 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에 무언가 하면 진흙탕에 발을 디디게 된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다음과 같은 비판이 들어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곧 세상의 먹이사슬에 귀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제기하고 있는 문제를 전제하지 않으면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 삶의 문제이다.

장자(莊子)는 유유자적한 사람이다. 모두가 참새처럼 눈앞의 이익을 쫓고 있다면 그는 가히 대붕의 호연지기를 가진 큰 인물이다. 하루는 장자답지 않게 몹시 언짢은 표정을 하고 있는 장자에게 제자가 물었다. 어찌 그리 기분이 안 좋으십니까? 사연인즉슨: 장자가 숲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사냥을 즐기고 있을 때 갑자기 기이하게 생긴 까치 한 마리가 자신의 이마를 스치듯 날아 밤나무 수풀에 앉았다. 날개 너비가 7척(2m)이고 눈만 한 촌(寸, 3cm)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장자도 중국인인지라 과장이 심하다. 기분이 언짢아 까치를 잡기 위해 까치가 날아간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시위를 당기려는 찰나 상황을 파악해보니 까치는 사마귀를 잡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온 것이고 다시 그 사마귀는 시원한 그늘에서 울고 있는 매미에게 일격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장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눈에 불을 쓰고 있구나라는 큰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활을 집어 던지고 숲에서 나오려고 했다. 그 먹이연쇄 속에서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있는 생명체들의 한계를 자각하면서 활을 집어 던질 때까지는 기분 나쁠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발길을 돌렸을 때 산지기가 쫓아와 장자를 심하게 꾸짖었다. 장자를 밤나무 도둑으로 오해하고 야단을 친 것이다. 야단을 맞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도둑 누명을 씌우니 억울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처벌 운운까지 했으니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는가. 하지만 이런 이유로 기분이 나빴다면 장자답다고 할 수 없다.

장자가 기분이 나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밖의 형체에 정신을 빼앗겨 자신을 잊어버리고 탁한 물만 보다가 맑은 연못을 잃어버렸다.(吾守形而忘身,觀於濁水而迷於?淵) 기이한 까치에 혼을 팔려 밤나무 속으로 들어가 노닐다가 나를 잃어버렸는데(忘?) 밤나무 숲 지기가 나를 꾸짖어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깨끗한 물에 노는 몸이다. 그런데 외부의 형체에 정신이 팔려 먹이연쇄로 이루어진 세상(濁水)에 발이 빠져 놀다가 망신(忘身)하여 호된 꾸짖음을 들었기에 기분이 나쁜 것이다. 세상이 더러워도 그 안에 들어가 노닐면서 더러워지지 않으면 허물이 될 일이 없다(入其俗,從其俗). 그 안에 먹이연쇄 고리의 하나로 포함되어 휩쓸리면 더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사마귀가 매미를 노릴 때(螳螂搏蟬) 까치가 사마귀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다른 걸 먹는다는 건 다른 것이 나를 먹기 위해 노리고 있다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악착같이 살려고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다. 삶이 깨끗할 수가 없다. 장자는 먹이연쇄의 고리로 이루어진 세상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거기에 매몰돼 스스로를 잃어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해석한 장자 생각이다.

장자에게도 물을 수 있다. 탁한 세상에서 탁하지 않게 살 수 있을까? 매미-사마귀-까치-장자로 얽힌 먹이연쇄 고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초연하게 살 수 있을까? 세속에 들어가 세속에 따르며 살되 청정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적게 먹는다고 해도 먹는 건 먹는 거다. 먹기 위해서는 다른 걸 죽여야 하기 때문에 나의 존재 자체가 먹고 먹히는 탁한 질서를 전제한다. 이에 대해서는 장자도 예외일 수 없다. 삶은 벗어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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