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무꾼
선녀와 나무꾼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2.06.0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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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이사하면서 쌓아 놓았던 책을 정리했다.

오래되어 누렇게 변했거나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읽었던 전래동화와 월간잡지를 분류해 재활용품으로 내놓았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선녀와 나무꾼이다. 설화를 바탕으로 지어진 책의 제목은 작가마다 다르다. 나무꾼과 선녀가 있고 선녀와 나무꾼이 있으나 내용은 같다.

뻔한 내용인데도 다시 읽어 보니 기가 찬다.

작금의 시대에 이런 나무꾼은 악랄한 범죄자다.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죄명이 많다. 날개옷을 훔쳤으니 절도죄, 목욕하는 것을 몰래 봤으니 성희롱에다 성폭력범이다.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범죄를 사전 모의한 사슴도 용서할 수 없는 존재다. 나무꾼은 제 욕심 채우자고 하늘나라 선녀님을 금강산 깊은 산속에 감금해 놓고 아이까지 낳게 했다.

한 가족을 비탄에 빠트리고 여자의 삶을 망가뜨린 파렴치범이다. 낯선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생판 모르는 남자와 살면서 아이 낳고 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나무꾼은 몰랐을까.

일방적인 관심과 사랑은 상대를 병들게 한다.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선녀는 날개옷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자기 삶은 포기하고 아이만 품어 안았을 터이다. 날개옷을 찾았을 때 남편에 대한 미련 없이 두 아이를 안고 살던 곳으로 날아갔으니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선녀의 모정만큼은 인간세계보다 훨씬 강해 감동적이다.

하지만 나무꾼의 다음 행동에 또다시 화가 난다.

홀어머니를 산속에 두고 처자식에게 가겠다고 두레박을 타고 올라가 처가 덕을 보고 있는 불효자가 아닌가.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홀로 있는 어머니를 잠시 보고 가려 천마를 타고 내려온다.

아들을 위해 팥죽을 쑤어주는 어머니, 뜨거운 죽을 천마 위에서 급하게 먹다 흘려 놀란 말이 나무꾼을 떨어뜨리고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그 후 나무꾼은 수탉이 되어 새벽마다 울었다고 하니 하늘에서 벌을 내린 것이 분명하다.

나무꾼은 날개옷을 감추고 선녀를 볼모로 잡아 강제로 아내로 삼았다.

여자의 약점을 잡고 부부로 사는 동안 나무꾼은 행복했을까. 주위를 둘러보면 현대판 나무꾼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른다.

이웃 마을에 사는 허리 굽은 할머니가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며느리는 삼 년 전, 친정으로 갔다.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천만 원을 받아 친정에 주고 한국 농촌으로 시집온 심청이처럼 효성 깊은 캄보디아의 어린 여자다.

늙은 남편은 적은 땅에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가끔 공사장을 기웃거리나 빈 날은 술에 젖어 지내는 사람이다.

친정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타국에 왔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 농촌의 가난한 남자와 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의 구박과 폭력에도 틈틈이 딸기 하우스에서 일하고 일당 받아 살림을 꾸려가더니 더 이상 못 견디겠는지 가족 몰래 혼자만 캄보디아로 떠났다.

날개옷을 훔친 나무꾼도, 돈을 주고 어린 아내를 사 온 늙은 남자도 결국 혼자가 되었다. 여자의 마음은 열지 못하고 약점만 쥐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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