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침
꿀벌의 침
  • 한기연 시인
  • 승인 2022.06.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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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시인
한기연 시인

 

벌써 삼십여 분째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다. 휴대폰으로 전해지는 목소리에는 흥분된 감정과 서운함이 담겼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는 속내를 털어놓으며 감정을 누그리는 중일 게다. 충분히 이해하기에 대답하고 공감해주며 들어준다. 말끝에 ‘오늘 말은 잊으라’라며 당부 아닌 당부를 한다.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허심탄회하게 쏟아낼 정도로 신뢰하는 사이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타인의 말을 한 번 듣고 잊어버리는 나의 습성이 장점으로 주목되는 순간이다. 주변인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가끔 한 마디씩 거들면서 의견을 말해 보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상대를 대한다.
페르소나(persona)는 라틴어로 ‘가면’이라는 의미다. 심리학적으로는 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아 또는 자아가 사회적 지위나 가치관에 의해 타인에게 투사된 성격을 말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로 사람들은 누구나 많은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남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모습, 들키면 안 되는 모습,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문제, 수치, 두려움, 감추고 싶은 나의 모습들을 만나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여준다. 누군가에겐 많이 보여 줄 수도 있고, 또 어느 누군가에겐 아예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가면이 하나씩 더 추가되었다. 나를 드러냄으로써 받았던 상처가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대하는 방어기제로 작용했다.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괴리감이 크다. 그런 점이 내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마주하면 적극적 대처보다는 ‘신포도’의 논리로 자기합리화를 하기 일쑤다. 문제해결보다는 소극적인 회피에 가까운 편이다.
스트레스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는데 긍정적 스트레스(eustress)와 부정적 스트레스(distress)다. 긍정적 스트레스는 당장에는 부담스럽더라도 적절히 대응하여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는 스트레스고, 자신의 대처나 적응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스트레스로 불안이나 우울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경우는 부정적 스트레스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우리의 생활에 활력을 주고 생산성과 창의력을 높일 수 있다. 즉, 스트레스에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생활사건 모두가 포함될 수 있으나 주로 부정적 생활 사건과 관련된 스트레스만을 가리킬 때를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 상황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결국 질병으로 가게 되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생산적이고 행복해질 수 있다. 
꿀벌은 꽃가루를 운반해 꽃과 식물의 번식을 도와 생태계를 보전하고 농작물의 재배 과정에서 해충을 잡아먹어 병충해가 들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 간혹 꿀벌에게 가까이 접근하면 침을 쏘기도 하지만 얻는 것은 더욱 많다. 꿀벌의 침처럼 스트레스도 때론 삶의 활력을 주는 요소가 된다. 그 상황을 견디면서 인내를 배우기도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이는 수많은 페르소나가 모두 나의 모습임은 분명하다. 사소한 말투나 행동이 스트레스를 주지만 그에 대한 대처는 미숙하기 그지없다. 거짓된 가면을 솔직함으로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머뭇거리지 말고 스트레스 상황을 긍정적으로 전환하여 독침을 날리고 관계에서 표류하지 않는 노력을 해야겠다.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유쾌한 변화를 바라며 적당한 자극을 즐길 줄 아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러다 보면 내가 쓴 가면을 몇 개쯤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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