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연구자 역량강화 지원사업
청년연구자 역량강화 지원사업
  • 이승준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 승인 2022.04.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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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승준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이승준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군대를 막 전역한 대개의 예비역처럼 대학교 2학년 시절을 인생의 목표를 찾기 위한 방황의 시기로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가 솟았던 것일까?

볕이 좋은 어느 날, 나는 썰물 밀어닥치듯 은사님의 연구실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해 인문학도가 되고 싶노라고 선언 아닌 선언을 했다.

거무죽죽한 얼굴로 평소 성실하지도 않은 학생이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는 당찬 발언에 은사님은 적잖이 당황하셨다.

하지만 그 이후로 10여 년의 세월 동안 게으른 제자를 앞에서 당기시고 뒤에서 밀어가시며 끈질긴 가르침을 주셨다. 그렇게 아둔한 머리로 학은(學恩)의 깊이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무렵, 나는 충북에서 석·박사를 마친 고전시가 전공자가 돼 있었다.

그러나 인문학자로서 내가 지니는 자부심과는 달리 현실은 적잖이 냉혹했다. 여러 선생님의 배려로 모교 강사 자리를 구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었다.

선배들은 이나마도 좋아진 거라고 말하곤 했다.

사회에서는 매일 같이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에 대해 목 놓아 강조하고 있건만, 정작 젊은 인문학자는 호구 걱정을 하는 것이 당시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만큼 사회의 현실과 나의 처지 사이에는 적잖은 간극이 있었던 게다. 위로라면 나만 힘든 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그러던 중 충북도와 충북연구원이 학문후속세대의 연구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청년연구자 역량 강화 지원사업'을 시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초 학문 분야의 청년연구자가 연구비 지원의 기회를 얻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정말 드문 일이었다. 이에 평소 관심 있었던 `삼죽사류(三竹詞流) 해제 연구'를 주제로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삼죽사류'는 19세기 제천 백운면 일원에 거주했던 삼죽(三竹) 조황(趙榥)의 시조집이다. 향촌 사족이 창작한 시조집으로는 손꼽을 만큼 많은 분량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나는 `청년연구자 역량 강화 지원사업'을 통해 이 시조집의 수록 작품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분석할 기회를 얻었다. 충북도와 충북연구원의 지원은 단순히 연구비 지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문위원을 섭외해 여러 차례 자문회의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함으로써 연구 방향을 지속해서 점검할 수 있었고, 연구성과를 대외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성과보고회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행정 편의를 전폭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연구자가 온전히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모든 발전은 굳은 터전 위에서 가능하듯이, 지역의 발전에도 청년 연구자들의 저력이 필요하다. 지역과 개인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청년연구자 역량 강화 지원사업'과 같은 양질의 사업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의 경우처럼 이 지원사업은 지역의 청년 연구자들에게 충북의 연구자원을 탐색할 기회의 장이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 나는 들인 공에 비해 과분한 기회를 얻어 경남대학교의 교편에 서 있다.

연구자로서 내가 얻은 지원이 이 위치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큼 힘이 됐는지를 거듭 깨닫는다.

이제 바라는 것은 지금도 대학원의 한편에서 인문학도로서 소양을 키우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이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또한 나처럼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 속에서 연구자로서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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