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인생살이
달리기와 인생살이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2.04.27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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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달리기를 못하는 둔재였습니다.

학교 운동회 날 8명씩 한 조가 되는 달리기경주에 꼴등을 도맡아 놓고 했으니까요.

모처럼 엄마도 와서 응원하고 잘 보이고 싶은 여자애도 지켜보고 있어서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었는데도 마음만 앞설 뿐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겁니다. 어쩌다 운 좋게 7등 할 때도 있었지만 달리기는 청소년기에 자존심을 뭉개는 장벽이었습니다.

달리기에 얽힌 아픈 추억 아니 값진 교훈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대학 갈 형편이 되지 않은 제게 학비 없이 먹여주고 입혀주는 육군사관학교는 희망의 도피처였고 로망이었습니다. 요행히 입학시험 문턱을 넘었는데 1,500m 달리기 체력검증이 문제였습니다.

사력을 다해 뛰었는데도 제한 시간에 들어오지 못하는 겁니다. 너무나 아쉽고 원통해서 대위계급장을 단 심사관에게 한번만 더 뛰게 해달고 통 사정해서 맨 뒷줄로 가서 다시 뛸 기회를 얻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다시 이를 악물고 뛰었는데도 1차 때보다도 기록이 더 저조하게 나오니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 자신이 원망스러워 망연자실해 있는 내게 대위님이 다가와 “귀관! 귀관의 간절함이 가상해 합격시켜주고 싶지만 그 체력으론 육사생도 4년의 훈련과정을 이수하기 어려울 것 같네. 그러니 오늘의 그 기백과 간절함으로 다른 분야를 개척해보게. 그러면 반드시 성공할 걸세 귀관은. 잘 가게” 하며 어깨를 툭 쳐주는 겁니다. 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 대위님의 말이 뇌리에 깊이 박혔고 두고두고 삶의 지렛대가 되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물론 고희에 이르기까지 그때 달리기하던 심정으로 살았고 그런 덕분에 나름 일가를 이루며 무탈하게 살고 있습니다. 살아보니 인생살이도 올림픽 육상경기 종목처럼 다양했습니다.

100m 달리기가 있는가 하면 장애물경기도 있고 마라톤 같은 오래달리기도 있었습니다.

단거리경주를 잘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중거리경주를 잘하는 이가 있고, 장거리경주를 잘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장애물경주를 잘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하여 달리기가 말합니다. 육상선수처럼 저마다의 소질과 적성에 맞게 사는 게 지혜이고 축복이라고.

40대 때 직장 마라톤동호회에 가입하여 동료들과 틈틈이 달리기를 했는데 속도가 느려서 그렇지 오래 달리기는 제법 하는 겁니다.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한참 달리다보면 나를 추월해 신나게 달리던 이가 뒤로 쳐지는가 하면 마라톤깨나 한다는 이가 오버페이스로 중도에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무릎이 고장 나 마라톤을 그만둔 지 오래이지만 마라톤을 하면서 얻은 교훈도 제법 있습니다.

속도 못지않게 지구력도 중요하다는 걸, 과욕은 금물이라는 걸, 준비 없는 완주는 없다는 걸, 인생살이에 집중과 선택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체득했으니까요.

각설하고 달리기는 인간을 비롯한 육상동물들의 이동 속도를 올리기 위한 수단이자 방편입니다. 수렵생활을 하던 원시인들도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도 달리기는 곧 생존이자 삶의 경쟁력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더 빨리 달리는 종이 먹잇감을 채갔고, 더 빨리 달리는 종이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달리기는 건강증진이나 스포츠로서 기능할 뿐입니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 로켓 등을 개발하고 진화시켜서 이동 속도를 날로 빠르게 하고,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개발하고 확장해 통신 속도를 날로 빠르게 해서입니다.

그로 인해 인간의 위세가 등등 해졌지만 그럴수록 지구는 황폐해지지고 인성은 삭막해져갔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쉼표와 느낌표가 있는 삶 속으로..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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