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불
꽃불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04.1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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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부엌으로 난 창문 너머로 분홍빛 불이 켜졌다.

어디서 날아와 어느 결에 자리를 잡은 것일까. 빛깔이 너무도 고와 요즘 남편과 나는 부엌 창문 앞에서 곧잘 붙박이가 되곤 한다. 작년에는 한 그루뿐이었는데(아니 곁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올해는 두 그루의 개복숭아 나무에서 분홍빛 고운 꽃들이 조랑조랑 매달렸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는 서로 개복숭아 꽃을 보며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역시 개복숭아 꽃보다 예쁜 건 없어.”

“올해도 누군가 몰래 열매를 따 갈까?”

“이번에는 잘 지킬 거야.”

뒷집은 네 해가 넘도록 주인 할머니가 요양원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폐가가 되고 말았다.

앞마당에는 어디서 날아와 자리를 잡았는지도 모를 나무들이 여기저기 덩치를 키우고 있고, 덩굴 식물들도 앞마당을 비롯해 뒷마당까지 점령을 해 버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덩굴 식물들의 후손들은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리라. 저리도 예쁜 것을, 겨울에는 죽은 듯이 숨죽이고 기척도 없더니만 봄이 되니 여기 저기 꽃들은 꽃불의 스위치를 딸깍하고 켜 놓았다.

꽃불을 켜는 것이 어디 자연 뿐이겠는가.

얼마 전 동해안의 산불 피해로 그곳 주민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방송으로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모금으로 마음을 보태고 있다.

봄이 시작되자 건조한 탓에 작은 불씨가 온 산을 태우고 있다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일 뉴스를 장식했다.

불은 산을 따라 띠를 만들며 타들어 가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번 동해안의 산불 피해는 서울 면적의 3분의 1이나 되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의 한숨과 시름만이 가득했다. 그곳에 따뜻함을 불어 넣어 준 것은 이번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준 꽃불이었다.

하기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위기일 때 더욱 더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1997년 우리나라는 국가 부도 위기에 처했지만 국민들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해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또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 선조들은 일제에 진 빚을 갚기 위해 1907년 국채보상 운동을 벌인 민족이었다. 남정네들은 담배를 끊어 저축을 했고, 여인네들은 금은 비녀와 가락지 및 노리개를 내놓고, 심지어 머리털을 잘라 팔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간계로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그 정신은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숭고한 일이다.

그렇게 나라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우리 선조들은 한마음으로 꽃불을 피워내곤 했다. 그러한 조상들의 후예들이니 그 따뜻한 마음이 어디로 가겠는가. 분명 강원도 산불 피해자들도 우리 국민이 켜 주는 따뜻한 꽃불로 기운을 차리고 일어서리라 본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코로나 터널도 봄이 오니 서서히 꽃과 함께 밝아 오고 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이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가 결정 되었다.

물론 마스크를 벗어 던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밀렸던 이야기를 실컷 나눌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잘 견뎌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고 건네며 등도 토닥여 주리라.

그리고 꽃들이 꽃불을 다 끄기 전에 봄나들이를 떠나는 꿈도 꾸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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