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의 꾀와 데리다의 훈수
프로메테우스의 꾀와 데리다의 훈수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3.3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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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서구 문명은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끼어들면서 모든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신과 인간 사이의 친밀함이 틀어져 틈이 생긴다. 철학에서는 이를 직접적(immediate) 관계에서 매개된(mediated) 관계로의 전환이라 말한다.

신과 인간이 직접적으로 소통할 때에는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 아니다. 내게 소중한 건 먼저 신에게 바친다. 자기는 신에게 바친 나머지로 배를 채운다. 신은 인간을 아끼고 인간은 신에게 헌신한다. 여기에 이해나 거래는 없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안쓰럽게(philanthropic) 인간에게 조언한다: 기름 덩어리나 뼈와 같은 걸 살코기로 살짝 가려서 신에게 주고 너는 살코기를 기름 덩어리로 덮어서 안 좋은 걸 차지하는 것처럼 해. 그렇게 실속을 챙겨, 바보처럼 살지 말고.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꼬임에 넘어가 그렇게 했다. 제사나 봉헌이 위장된(형식적) 의식으로 뒤바뀐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꼬드겨 신을 속이게 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제우스 몰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달함으로써 끝까지 인간 편을 든다.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시작된 문명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에게 거짓 제사를 지내면서 시작된다. 곧 신에게 헌신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취함으로써 문명 생활을 시작한다.

이런 관계가 인간사회에서는 거래(economy)로 현실화된다. 장사는 손해를 보면서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익을 보는 것이다. 인간은 문명사회에서 서로를 위해 사는 것처럼 위장한다. 상대를 위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더 많이 취하면서 산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손해 본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면서 사실은 가장 많이 취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다고 하는 놈들이 사실은 가장 잘 먹고 잘산다. 이런 위장된 거래관계는 세상을 불평등하게 만든다.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사람을 위해 배려하면서 뭔가를 주지만 사실은 주는 척하면서 더 많은 걸 빼앗아가는 것이 위장된 거래관계(경제)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각종 불평등(남-여, 빈-부, 백색 인종-유색인종, 지배-피지배)이 난무한다.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비롯된 문명사회의 특징은 불평등이다.

20세기의 철학자 데리다가 말한다. 인간사가 주고-받음(give-take)이라는 건 맞다. 태어난 모든 것들은 주고받음(economy)의 관계 속으로 편입되어 있다. 사람들은 주면서 주지 않고 받은 것 같지만 받지 못하는 위장 거래에 익숙해 있다. 데리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말한다. 신을 속여 문명 생활을 시작하게는 했지만 신이 없는 건 아니다. 문명화된 거래관계(신-인간, 인간-인간)에도 신이 없어진 건 아니다. 신으로부터 등을 돌려야 속임이나 위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은 원래 잊혀지지 않는다. 거짓으로 꾸미거나 속이려고 해도 속일 대상이 있어야 한다. 곧 신이 없다면 (신을) 속일 필요도 없다. 속이는 순간 신이 개입되게 되어 있다. 데리다는 이를 `어떤 관계도 절대타자(신)로부터 자유로운 관계는 없다'고 표현하며, 이게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유명한 데리다 선언의 의미이다.

거래관계에 신이 개입되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 혹할 수밖에 없는 판도라를 만들어 인간에게 주면서 사실은 인간에게 온갖 재앙을 가져다준 신의 대응을 생각하면 된다. 인간은 상대(신, 인간)를 속여 이득을 취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취한 판도라가 결국 자신에게 재앙의 근원이 된다. 곧 인간의 거래관계는 상대를 속여 이득을 취하려고 하지만 결국 얻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이 취하면 취할수록 그는 수렁에 빠져들게 되어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 정말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모든 게 무상한 것이여.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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