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관 신규식 선생 순국 100주년에 부쳐
예관 신규식 선생 순국 100주년에 부쳐
  • 김동진 신규식 선생 기념사업추진위 사무총장
  • 승인 2022.03.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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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동진 전 언론인
김동진 신규식 선생 기념사업추진위 사무총장

 

올해는 청주지역 출신 독립투쟁가로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예관 신규식 선생의 순국 100주년입니다.

고국을 떠나 이국만리 상하이에서 오로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심으로 진력하시다 끝내는 스스로 죽음으로써 임시정부의 통합을 웅변하신 게 1922년 9월 25일입니다.

이런 예관 선생이 100년 동안 아직도 명계에서조차 무적자로 남아 계시며, 선생이 나고 자라며 독립투쟁의 뜻을 키운 가덕면 인차리 생가는 불에 타 사라졌고 생가터에는 표지석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1919년 4월 상하이 소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실질적 설계자이시고 그해 9월 통합 임시정부의 실질적 산파였던 예관 선생은 명실상부한 임시정부의 국부라 할 수 있습니다. 혜성처럼 수 없이 명멸한 독립혁명가들의 중심에 예관 선생이 북극성처럼 자리하고 계시며, 독립투사들 스스로 하나같이 존경하며 인정하는 독립혁명가가 바로 예관 선생입니다.

43년 간의 길지 않은 생몰을 대별하여 교육과 독립투쟁으로 관철하신 예관 선생이 바로 우리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끝없이 부끄럽습니다.

구한말과 대한제국의 개화기에 전국에서도 유례없이 먼저 신학문을 강습하고 밀려오는 외세에 맞서 독립교육을 실시한 곳이 이곳 청주이건만 정작 교육도시 청주의 뿌리는 방치된 실정입니다. 예관 선생이 스물 두 살 때 신학문을 가르치던 산동학교는 잡초 무성한 폐허로 변했고, 스물 네 살 때 직접 설립해 운영하시던 덕남사숙은 여염집으로 변했습니다. 교육도시 청주의 남상이라 할 수 있는 문동학원, 덕남사숙, 산동학교, 문동학교, 청동학교는 어디 하나 되살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예관 선생의 뜻과 업적을 재조명하고 기림으로써 대한민국 독립투쟁사를 올바로 정립하고 동시에 지역적으로는 교육도시 청주의 근원을 회복하자는데 뜻을 모은 청주시민들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1월 하순 기념사업에 동참하기로 한 시민들이 처음 모였고, 4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추진위원장 영입과 구체적인 사업계획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이어 지난 3월 26일 오후 2시 충북진로교육원에서 예관 신규식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발기인 대회가 열렸습니다. 추진위원장에는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가 추대됐습니다.

시민단체, 학계, 교육계, 의회, 광복회, 종친회 등으로 구성된 스무 명의 추진위원회가 발족했고, 유성종 전 교육감, 나기정 전 청주시장, 박영수 전 청주문화원장, 신원식 종친회장 등 지역 명망가 열 명이 고문으로 위촉됐습니다. 기념사업의 당위성과 시의성에 공감한 충북도와 청주시에서는 적지 않은 금액의 추경예산을 편성하며 추진위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추진위는 오는 4월 6일 선생의 생가터 부근 합장 묘역에서 고유제를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홍보사업과 계승사업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학술 세미나, 전시회, 기념식, 전기 출판사업 등.

아울러 선생의 고향인 인차리를 중심으로 일대 가덕면과 낭성면, 미원면 등에 대한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 지역은 고령 신씨 집성촌으로 일찌기 문중 차원에서 신학문을 가르치고 개화기 인재들을 양성함으로써 이후 1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고 청주가 훗날 교육도시라는 이름을 얻게 된 배경으로 작용한 곳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투쟁사 재조명은 물론 교육도시 청주의 정립을 위한 이번 기념사업에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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