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없다
답은 없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02.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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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우리는 자신을 소개할 때 무엇부터 말하고 싶을까. 물론 자신을 어떤 자리에서 누구에게 소개하느냐에 따라 약간씩은 달라질 수 있다. 그 모든 조건을 빼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해보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현대사회는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누군가와 함께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일은 적어도 한두 번 이상은 겪어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들어가도 자신이 누구인지 앞에 나가 발표를 해야 한다. 그렇게 수없이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를 거치고 해 냈으면서도 성인이 되어 자신을 소개하라면 머뭇머뭇 거리게 되는 것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대학에서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과의 첫 번째 시간은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키워드를 발표하는 수업이다. 물론 개 중에는 자신을 대표하는 단어를 자신 있게 발표하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한참 뜸을 들이거나 뭉그리고 만다. 심지어 발표를 다음 시간으로 미루는 학생도 있다. 또 성장 과정을 써 보라고 하면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고, 부모님은 어떤 점이 훌륭하신 지에 대한 설명이 3분의 2가 할애된다.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3분의 1 정도, 그것도 부모님의 경력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다. 기업 쪽에서는 부모님의 경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원자의 성장과정, 성격, 경력에 더 관심이 많다. 물론 성장과정에서 부모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성장과정에서 주도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기업의 입장에서 눈여겨보는 부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우연히 TV에서 소개되었던 책이 있다.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프로그램에 소개된 그 책은 《생각의 지도》였다. 김경일 교수가 해설을 맡았다. 서양식에서 생각하는 방식과 동양식 추론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저자 리처드 니스벳은 그 이유가 동양에는 공자가 있고 서양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축이 되는 사상의 뿌리부터 그 결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경일 교수는 이러한 차이점을 자기소개서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동양에서는 개인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자라온 가정환경과 배경, 인간관계, 주변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서양에서는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 장점에 국한시켜서 그 사람을 보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양은 대체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높이겠다는 의도로 겸손을 미덕으로 보지만 서양은 자신을 높여서 홍보하는 걸 자연스럽다고 여긴다고 한다.

사실 그동안 나도 학생들의 자기소개서 서술 방식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도 어느 단체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는 두루뭉술하게 `어디에서 온 누구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게 소개를 하니 나 혼자 나의 장점을 이야기하고 소위 `잘 난 척'내지는 `튀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모르게 깊게 밴 이러한 사고방식이 동양에서 중시하는 관계성에서 온 것이라니 자라온 환경과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 책이었다.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피 속에는 상대를 배려하고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유전자가 살아 꿈틀거린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넓고 바쁘다. 이런 세상에서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자신을 알아가는 일도 제각각, 누군가에게 나를 알리는 방법도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하면 된다. 다만 온전한 자신을 빼지 않는다면 답은 천가지 만 가지여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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