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그는 보스가 되었을까
어쩌다 그는 보스가 되었을까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02.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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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이 때가 좋다. 긴장의 매듭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즈음. 소요가 가라앉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 달콤한 금요일 저녁이 좋다. 요맘 때면 그이의 핸드폰이 어김없이 울린다. “사장님, 일 있어?” 대뜸 묻는다. 안 보아도 안다. 주말에 일이 있느냐는 외국인 근로자인 하마드다. 아들뻘의 그에게 끝에 “요”자를 붙여야 함을 아무리 가르쳐도 고쳐지지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이집트인으로 타국인 여기에서도 라마단 기간을 철저히 지킨다. 해가 뜰 때부터 지기까지 금식을 하는 시기다. 일을 하면서도 점심도 거르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질 않아 걱정을 한다. 4, 5월의 볕은 밖에서 일하기에는 더운 날씨다. 땡볕에 쓰러질까 봐 겁이 나 물을 권해도 도무지 뜻을 굽히지 않는다.

맥은 말이 없고 일만 열심히 하는 태국 청년이다. 키가 작고 왜소하여 당차지 못할 거라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일이 있을 때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다. 그는 동생 학비를 벌려는 목적이다. 두 여동생을 대학교에 보내려고 왔다고 한다. 요령을 피울 줄 모르고 묵묵한 그에게 눈길이 더 가는 듯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게 안쓰러워 늘 챙긴다.

몽골의 보기는 덩치가 좋다. 몸으로 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곰을 사냥하다가 긁힌 팔뚝의 칼자국 같은 상처를 보여주며 힘을 과시한다. 핸드폰에는 축 늘어진 큰 곰과 찍은 사진이 저장되어 있다. 그이에게 말 두 마리를 준다고 했다는 말은 허세가 아닌 진심이 담겨 보인다.

주말이면 고정으로 나오는 인원은 열 명이다. 어디나 그러하듯 일터에는 모두 외국인들뿐이다. 이들은 주중에 공장을 나가고 주말에 인력사무소를 통해 오는 사람들이다. 사업을 시작한 이래 함께 일을 해왔기에 지금은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누가 용접을 잘하고 또 기계를 잘 다루는 이가 누군지 안다. 밖의 일을 잘하는 사람과 힘쓰는 일을 맡길 이를 안다.

또 점심시간이면 한바탕 소란스러워진다. 돼지고기 안 먹는 사람이 있고 소고기를 가리는 이가 있다. 한 줄로 세워 메뉴를 정하고 식당을 몇 팀으로 나누어 가는 진풍경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정작 그이는 점심을 시원찮게 먹게 된다고 한다.

처음에 그이는 인원이 많은 날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제 일꾼들을 다 파악하여 표정만 보아도 기분을 읽어낸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시행착오를 거쳤을까. 말도 안 통하고 일도 낯선 그들을 지금처럼 삐걱거리지 않고 잘 돌아갈 수 있게 만들기까지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지 그때는 몰랐다.

그들은 다국적 사람들이다.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몽골, 베트남, 이집트, 스리랑카, 네팔, 우즈베키스탄 등 다양하다. 힘든 노동을 할 만큼 배움도 짧지 않다. 석사 출신이 있고 교사를 하다 온 이도 있다. 또 은행원을 그만두고 오기도 했다. 지닌 사연도 가지가지다. 그들은 그이를 보스라 쓰고 사장님이라 부른다. 얼마 전 그이는 자신이 보스로 저장되어 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왜 그들은 보스라고 했을까. 이유를 물어보아도 싱겁게 웃기만 한다는 것이다. 엄할 때는 엄하게, 너그러울 때는 아주 너그럽게 대하는 그이다. 오히려 “파더”가 더 어울림 직하다. 삯에 후한 그이는 주지 않아도 될 팁을 과잉 지급한다. 사람이 악착같아야지 무르면 무슨 사업이 되냐고 말하면 대답은 한결같다. 사람을 먼저 얻어야 돈을 얻는 법이라고. 그들이 나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들이라며 나무란다. 자기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서로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한다고.

그이가 어른이다. 동갑인데도 그이 앞에선 나는 이렇게 애다. 가끔 밴댕이 소갈머리에 일침을 꽂는다. 두 달 더 늦게 태어난 여파라기엔 파장이 크지 않은가. 늘 한 수 배우며 나이를 먹는 어른이를 어쩌면 좋을까. 조만간 나의 핸드폰에도 보스라고 저장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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