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엄 뒤집는 날
두엄 뒤집는 날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2.01.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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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한겨울이다. 한낮 기온은 영하권에, 체감온도는 더욱 낮다는 일기예보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에 콧등과 마스크 사이로 김이 올라와 안경에 서리고 속 눈썹에 얼음알갱이가 달린다. 작업용 방한 장갑 안의 손끝이 끊어질 듯 시리다. 무슨 큰일이 난 것도 아닌데 새벽 가로등이 꺼지기도 전부터 난리다. 주말 휴일의 시간은 일분일초가 아깝다. 오롯이 몸뚱이만이 움직이는 시간이다.

한 주간 모아둔 것들을 트렁크에 싣는다. 커피 찌꺼기, 생선 가시 등 음식물쓰레기가 꽝꽝 얼었다. 주변 카페에서 쓰레기 봉지에 버리는 커피 찌꺼기를 매일 같이 수거(?)하니 양이 제법이다. 커피 찌꺼기를 담은 비닐은 바스락거리며 부서질 기미다. 중대한 임무인 듯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켜쥐고 이송작업을 수행한다. 가쁜 호흡에 마스크 틈새로 김이 품어져 나온다.

20여 분 달려 도착한 곳은 같은 시 단위 행정구역인데 공기가 사뭇 다르다. 변두리라 수은주는 더 내려가지만 상쾌하다. 공기가 쾌적하니 햇살이 더욱 따습다.

도착하자마자 뒤꼍으로 향한다. 잘 덮어둔 천막을 끌어내리고, 거적때기를 걷어 젖힌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수면 안개가 피어오른 듯 잔잔한 김이다. 매번 커피 찌꺼기, 낙엽, 음식물쓰레기를 쌓아도 한 주만 지나면 숨이 죽는다. 한겨울인데 김이 나고 열기가 느껴진다.

겨울은 두엄을 만들기에 제철이다. 두엄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재료는 낙엽이다. 가을 끝자락에 떨어진 낙엽은 제 소임을 다하고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땅으로 내려앉았다. 그냥 두면 땅을 덮어 뿌리 보온에 도움이 되겠지만, 더 나은 쓸모를 위해 거둔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 하나 쫓아가 소중하게 거둔다. 잘 모은 낙엽에 커피 찌꺼기와 음식물쓰레기, 재 등을 켜켜이 쌓고 섞는다. 처음에는 갈퀴 정도에서 양이 더해지고 숙성이 되면서 쇠스랑이 동원된다. 적당한 수분을 가지는 재료와 바스러질 듯 잘 마른 낙엽이 잘 버무려지고, 거적때기를 뒤집어쓰고 추운 겨울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금세 하나가 된다. 여기에 다른 식구들도 하나 둘 모여든다. 포근한 보금자리가 된다.

한겨울 혹독한 추위에 이만한 보금자리가 없다. 가운데 열은 높지만, 가장자리로 갈수록 적당하게 열이 전달된다. 대동단결도 아니고 지렁이부터 온갖 벌레들이 총집결했다. 제대로 숙성이 되어 열이 식을 즈음, 봄의 햇살에 마실 나갈 녀석들이다. 아직은 구수한 냄새가 아니다. 쇠스랑으로 뒤집는다. 일주일이나 두 주일에 한 번씩은 뒤집어 주고 다시 덮어 준다.

잘 버무려지고 섞이며 한데 어우러졌다. 수분이 빠지고 갈변되고, 겉모양만은 도렷했던 녀석들의 형체가 점차 사라진다. 뒤집을 때마다 그물망 같던 잎맥은 바스러졌다. 단단한 나뭇가지도 생선 뼈도 부스러질 듯 형체를 잃었다. 서로 다른 것들과의 조우, 오랜 시간의 버팀이었다. 채근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봄의 새순에서 여름내 진한 색을 더하며 뿌리로 양분을 축적했다. 가을이 돼선 미련 없이 떨켜를 받아들인다. 그리고도 내어주고자 거름으로 거듭나려 한다. 낙엽 혼자만이 아닌 많은 것과 어울림의 시간을 갖는다. 외부의 변화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섞이고 또 섞인다. 그렇게 반복되는 사이 독립된 개체의 형태는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돌아갔다. 가열찼던 열도 식을 즈음엔 그 어떤 냄새보다 달달하고도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흙에 뿌려질 것이다. 낙엽은 여럿을 만나 두엄이 되었다. 열을 내며 가스를 빼며, 뺄 거 다 빼고 완숙된 밑거름이 되었다.

서로 다름에 배척하는 것이 아닌, 공손히 받들어 들이고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쓸모없는 것이라 버려지는 것들이 고요함을 유지하고 오랜 시간 엄숙하여 속으로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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