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를 ‘도반’이라 불렀다
난 그를 ‘도반’이라 불렀다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1.12.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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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이러다 내 목이 부러지겠다. 11m의 천고를 가진 청주시립미술관 대전시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부처님 좌상이 공중에서 아슬아슬하다.

설치 작업을 위해 크레인 위에서 능숙한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들을 보며 벌써 두 시간째 그 밑에 서 있다.

나야 그렇다 치고, 전시작가인 장 선생은 밑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때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작품 디스플레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게 분명하다.

사방 5m 크기의 가상 `원'안에 부처님들을 꽉 채운다는 작품설계를 시작할 때부터 “그거 무리 아냐?”라고 따지듯 말했지만, 도무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어요~” 하면서 1년 넘게 `삼베' 재료로 부처님을 만들어냈던 장 작가가 드디어 현장에서 자기 생각을 설치하는 중이다.

“쉬었다 합시다. 그러다 사고 나면 크게 다쳐~” 설치에 몰입해있는 장 작가를 포함 3명의 미술인을 데리고 잠시 미술관 마당으로 나왔다. 초겨울 바람이 제법 차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담배 연기를 내뿜자 마치 시골 뒷마당 굴뚝 연기처럼 하늘이 연기를 쫙쫙 빨아들인다.

“거참 그렇게들 연기가 맛있나?” 평생 담배를 피워보지 않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장 작가님! 힘들어 어쩐댜?” “괜찮아요~ 밤새워라도 개막식 날짜는 맞춰야죠~” 담배 몇 모금으로 겨우 허리를 달랜 그들이 허겁지겁 다시 전시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나는 장 작가 그 친구를 언제부턴가 `도반'이라 불렀다.

사전적 의미로 도반은 `함께 도를 닦는 벗'이라 나온다. 친구와 도반은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친구보다 `도반'은 괜히 무언가 좀`멋'스러움이나 `예의'를 갖춘 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 우리 관계는 그렇다. 서로 반말을 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맘에도 없는 형식적 존칭으로 쓸데없이 대화를 낭비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처음 보는 상대처럼 어느 정도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는 친한 동료 같은 도반이다. 전업 작가인 그는 몇 번의 생활고를 전투적인 작업으로 버티고 버텨냈다.

지금은 햇살 가득 담은 멋진 작업실을 갖추고 작품 제작은 물론 찾아오는 손님들 맞이하느라 늘 분주하다. “선생님 요거 느낌 어때요?” 언젠가 도반은 작업실 한쪽에 있던 불상의 머리 부분, 일명 `불두'를 들어 보였다. “부처님 머리를 그리 들고 댕겨도 되는 거유?” 내 말에 빙긋 웃으며 도반은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재료가 삼베거든요. 처음엔 폐 침대 매트 안에서 조금씩 빼내 썼는데 이제는 수입해서 쓰고 있어요” 석고로 불두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삼베를 얇게 펴 바르고 굳혀 찍어내기를 무려 수백 번 반복했단다. 그렇게 시작한 청주시립미술관 초대전 준비만 정확히 1년이다.

나는 시간 날 때 가끔 도반의 작업실에 들러 그동안 만들어놓은 불상 숫자를 세어보거나, 둘이서 출출함을 해결하기 위해 산성에 있는 맛집 몇 군데를 찾아다니는 일 빼곤 특별히 도움이 된 적이 없다. 그래도 도반은 항상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그동안 고생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개막 날짜를 코앞에 두고 현장 작품 설치가 큰 진척이 없다.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전화기를 들었다. “장 선생님~ 미술관입니까? 내가 지금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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