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들의 직업병
엘리트들의 직업병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1.12.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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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우리나라에서 엘리트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첫째, 부모를 잘 두는 것이고, 둘째,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부모를 잘 두는 건 천운이고 공부는 자신의 노력이다. 공부는 대신해줄 수 없다. 공부 잘해서 성공한 사람은 행복할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존경할까?

이과에서 공부 제일 잘하면 의대를 간다. 학창시절에 느낀 거지만 의대 가면 개고생이다. 평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시험을 본다. 당연히 초죽음 상태로 학창시절을 보낸다. 한 학기 두 번 보는 시험도 지옥 같은데 일주일에 두세 번? 으악이다. 인턴, 레지던트 시절의 인생은 없다고 보면 된다. 지옥 같은 의사 준비 코스를 밟고 의사가 되면 평생을 환자들과 더불어 산다. 당연히 정신 건강이 안 좋아진다. 정신건강 불량, 의사의 직업병이다.

문과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법대 간다. 법조 엘리트들은 팔자가 좋을까? 아닌 거 같다. 법대생들끼리 하는 말: 자신이 선택했기 망정이지 누군가가 종용을 해서 법대를 왔다면 그 사람을 죽여 버렸을 거야. 얼마나 힘이 들면 그런 말까지 할까. 의대생들이 하는 고생 못지않게 개고생을 하는 게 사시나 변시 준비생들이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법조인이 되면 행복할까?

변호사? 의뢰인으로부터 돈 받고 법적 대리인 역할을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이다. 송사에 말려드는 자식 두지 말라는 말이 전해진다. 송사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면 그렇게 말하겠는가. 송사에 말려드는 사람은 일단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위법과 얽혀 있으니 윤리적으로야 말할 것이 없다. 평생을 송무에 시달리니 당연히 인생이 험해진다. 법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과 얽히니 인생이 순탄하지 않다. 남의 인생 문제 해결하면서 사는 것도 보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변호사들이 그런 보람을 느끼는지는 의문이다.

판사? 단죄를 당하는 사람도 심각하지만 단죄하는 사람도 편하지 않다. 판사 인생이 순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다. 사회적으로야 존경을 받고 대우도 받지만 인생 차원에서 보면 선택하고 싶지 않다. 철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판단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그렇게 사는 게 최선이다. 판단하는 일은 피곤하다. 오죽하면 식당에서 `아무거나'라는 메뉴를 만들겠는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판단을 평생 하고 살아야 한다고 해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판사는 판단 당하는 걸 못 참는 직업병을 앓는다.

검사? 법조인 중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직업으로 보인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거나 사람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범죄인임을 밝혀내야 하니까. 악역이다. 검사(劍士)는 칼(檢)을 휘두르는 사람이다. 요리하는 칼(刀)이 아니라 살상용 양날의 칼(檢)을 휘두른다. 당연히 사람이 부드럽거나 섬세할 수가 없다. 검사는 흉악범, 파렴치범, 조폭 등과 마주하고 살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닮아간다. 그래서 그런지 검사를 공인된 조폭이라고 한다. 지금은 많이 완화됐다고 하지만 검사동일체 원칙은 개개인을 상명하복의 질서에 들게 한다. 닥치고 따르라는 무법적인 조폭의 질서와 같지는 않지만 법테두리 안에서 상명하복의 위계를 따른다는 점에서 개인플레이를 하는 변호사나 판사와 같지 않다. 검사들은 몰려다니면서 폭탄주를 마신다.

검사는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고 생각하는 직업병을 갖고 있다. 사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 탈탈 털어서 먼지를 털어내는 사람이 누굴까? 우리나라에서는 검사가 이 역할을 했다. 잔 먼지부터 굵은 먼지까지 탈탈탈 털어서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권력을 행사해 왔다. 먼지 터는 사람이 먼지 있는 사람을 모실 수 있을까? 직업병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

직업병을 앓고 있는 엘리트들에게 나라를 맡겨야 하는 게 우리나라의 비극이다.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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