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기다림 끝에
간절한 기다림 끝에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1.12.1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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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올 3월 19일자 이법전심(以法傳心) 기고문이 ‘수많은 기다림, 그 간절함에 대하여’였는데, 사람을 비롯한 만물은 그 나름대로의 결실을 위해 기다림을 알고, 모든 기다림이 다 좋지는 못할지라도 간절한 기다림과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일을 벌이고, 걱정하느라 하나만 제대로 하라는 주변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벌인 일들을 모두 해내고 싶어 어느 하나도 놓지 않고 달리는 제 모습이 고군분투(孤軍奮鬪)와 같아 스스로도 종종 안쓰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말띠라 그런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데는 자신 있었습니다.
억울함과 불편이 없도록 도와야하는 일을 수행하지만, 주간에는 재판과 강의, 지역활동을 마치고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 제가 정작 지친 상태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는 한계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냥 멍하니 있기 싶기도 하고, 나의 일을 믿음직한 누군가와 나눌 수 없어 외롭기도 했습니다.
어려워도 버티니 그 간절한 기다림 끝에 동지(同志)의 대표님이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1년을 기다렸습니다. 세간의 억측에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남의 상처를 이용하여 줄을 서고 영달을 꾀하려는 사람들을 지켜봤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그 어려움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함이었습니다. 
중용(中庸)에서는 ‘우유부단하지 않고 신중하게, 경솔하지 않고 결단력 있게’ 행동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느 일이든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어 중심을 잡고 일관되게 실천하는 것을 중용의 덕이라 봅니다. 주변에서는 저를 보고 어리석다고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외로울지라도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대정신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혁신에 가까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치세력의 교체가 없이 인물만 바뀌는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결국 시간이 지났을 때 고인 물의 기득권을 재현하게 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모두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이 내세우는 선전이 민심에 기반한 것이라는 궤변을 펼쳐 민심을 왜곡하는 것을 중우정치(衆愚政治)라고 경계하였습니다. 열띤 대통령 후보 경쟁에서 경계해야 할 중우정치를 누가 외치고 있고 국민을 기만하려고 하는지 냉철하게 보아야 합니다.
중앙정치든 지방자치든 인물이 바뀌어야 정치 발전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맞을테지만, 변화를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기성이든 신인이든 어떠한 진정성이 있어서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왔는지, 그래서 시민들을 위해 어떠한 비전을 제시하여 발전을 이끌어낼 것인지 설명할 의무가 있고, 시민들은 그러한 요구를 해야합니다. “바꿔야 해”하면서도 정작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야” 한다면 언제 우리의 생활 속에 정치가 녹아들 수 있을까요.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생활이 곧 자치요, 정치가 될 수 있게 이제는 제발 진정성 있는 인물과 정치세력의 교체가 함께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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