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그림 이야기
200년 전 그림 이야기
  •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 승인 2021.12.1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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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메타버스, NFT 등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여러 이야기와 함께 2021년의 마지막 달 12월을 보내며 코로나19 이후 지금까지 필자가 몸담고 있는 예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가 큰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12월을 보내며 문득 200여 년 전 지금과 같은 사회의 변혁기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낸 최북, 가난했지만 학문을 통해 진경산수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도 했으며 부자가 억지로 그림을 요구하자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멀게 한 그는 `공산무인도( 空山無人圖)'와 `풍설야귀도(風雪夜歸圖)' 등 산수화를 잘 그려 `최산수'로도 불렸다.

누군가는 고흐에 빗대 최북을 `조선의 고흐'라고 하지만 고흐가 최북보다 150여 년 늦게 태어났으니 고흐를 `네델란드의 최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괴짜 화가로 알려진 그의 독특한 이력은 금강산 구룡폭포를 구경하다가 자기와 같은 당대 최고의 화가는 최고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며 폭포로 뛰어들기도 하고, 세상을 둘러본다며 중국과 일본을 돌아다녔으며 아주 비싼 값에 자신의 그림을 사지 않을 경우 그림을 그려주지 않다가도,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싼 값에 그려 주기도 했다.

최북이 75세에 죽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지기도 했는데 눈이 펑펑 내리던 추운 겨울날 술을 많이 마시고 길가에서 자다 얼어 죽었으니 `최북스럽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그림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두 점이 있는데 `공산무인도'와 `풍설야귀도'이다. 이 두 작품은 필자가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오마주 작업을 했었다. `공산무인도'는 인적이 전혀 없는 산수를 그린 것으로 중국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가 지은 시 `텅 빈 산에 사람 없고,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왼쪽 골짜기에는 물이 흐르고 오른쪽 나무에는 꽃이 피어 있으며 그 옆에 정자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조화롭게 보이는 이 그림 속에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최북은 어떤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작가적 상상력을 펼쳐보자.

당시 청나라의 문물과 이들을 통해 들어온 서양 문물들로 인해 실학사상이 일어나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던 급변의 시대였다. 중국이 세상의 전부로 알던 좁은 의식들은 점차 변화되고 확대되었다. 마치 물리적 공간만을 현실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던 지금 우리에게 메타버스라는 디지털 가상공간이 현실 공간화 되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공산(空山)은 그저 산에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보다 과거에 얽매인 생각과 욕심이 사라진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필자의 생각은 그동안의 사대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새로운 문물과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로서의 그림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의 그림 `풍설야귀도'는 눈보라 치는 겨울밤 집으로 돌아가는 한 나그네와 동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눈보라에 떠밀리듯 한 나그네가 힘없이 걸어가고 있다. 사립문 옆 마른 나무들이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쓸리고 있는 부분과 나그네를 향해 사립문 밖까지 나온 개가 짖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최북의 힘찬 필치로 거친 선과 나무 밑을 거칠게 표현한 것이 변화되는 세상에서도 꿋꿋이 생활을 이어나가는 우리네 모습 같은 서정적이며 푸근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200여 년 전처럼 급변하는 오늘, 이 두 점의 그림을 들여다보며 남은 12월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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