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雪)을 맞이하는 작은 이야기
소설(小雪)을 맞이하는 작은 이야기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1.11.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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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좀 느지막이 심은 배추를 수확한다. 아직 포기가 덜 자랐다. 속이 꽉 찬 배추를 기대했건만, 밤이면 손전등을 들고 민달팽이를 열심히 잡았건만, 배추무름병의 징후가 있기도 하여 서둘러 수확하기로 했다. 육십여 포기다. 한 집에서 먹을 양치고는 많을 수 있지만 김치 없이는 못 사는, 김치라면 어떤 음식도 대 환영하는 가족에게는 부족한 양이다. 이번이 올해 세 번째 김장이다.

첫 김장은 절임 배추로 담갔다. 아는 사람의 절임 배추다. 이십 킬로그램으로 세 박스, 배춧속은 올 농사의 수확물이다.

쪽파는 파는 상품만큼의 크기는 아니지만 속을 버무리는데 원 없이 넣을 수 있을 만큼 성공작이다. 대파는 봄부터 뽑아 먹고, 김장을 하고도 남아 겨울을 나고도 내년에도 뽑아먹을 양이다. 부족한 고춧가루며 갓은 시장에서 공수했다. 예년보다 절이는 수고가 없으니 한결 수월했다.

두 번째 김장은 작황이 좋은 알타리무와 김장 무다. 총각김치며 동치미를 담갔다.

그리고 세 번째 김장은 예전과 같이 몇 년간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제대로 된 연례행사를 치렀다.

감 수확은 최대한 늦췄다. 지나는 사람들의 포토존이기도 하고 한마디씩 하는 `꺼리'가 되고, 얄밉지만, 새들의 먹거리로 여유를 부렸다. 먹던 건 다 먹고 다른 거 먹으면 안 되나 이것저것 찔끔찔끔 생채기를 내듯 파놓고 결국은 땅으로 떨어트린다.

지나는 사람이 “감 파는 거냐고 묻는데 얼마에 팔지?” “개인 집에서 팔긴 뭘 팔아. 그냥 조금 달라고 하는 거지” 감을 따는 내내 직박구리는 안절부절못하고 들락날락 거리고, 지나는 차량은 창문을 열고 한마디씩 한다. 지나는 사람도 가는 길을 멈추고 물끄러미 쳐다본다. “저 높은 것을 어떻게 따지?” 그럴 땐 동작으로 보여준다. 어릴 적 바지랑대를 썼지만, 지금은 두 단으로 늘어나는 기다란 봉이 있다.

덜 익은 감이 하도 떨어져 몇 개나 달릴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익는 대로 주변에 먼저 나눠주고도, 막상 따내니 양이 제법 나왔다. 대봉은 두 접 이상, 곶감용 감은 무더기고, 단감도 두 접 이상은 수확했다.

추운 겨울을 대비하는 절기 소설(小雪)을 앞두고 겨울맞이를 서둘렀다.

파종한 마늘 위로는 떨어진 감나무 잎으로 덮어주고, 월동이 안 되는 식물은 실내로 들이고 먹거리는 수확을 서둘렀다.

올 수확은 제법 성공작이다. 수국 꺾꽂이도 실패하나 없이 뿌리를 모두 내렸다. 다른 것들도 번식을 제법 했다. 대성공이니 맘껏 자랑질이다. 성공담을 늘어놓고 찾는 사람들 양손에 화분을 하나씩 쥐여준다.

올 때는 빈손으로 가실 때는 양손 그득하다. 김장은 가족에 한해 나누고, 수확이 제법 많은 감은 기준이 단감 20개, 대봉 5개씩 묶음이다. 적으면 배달, 더 많을 때는 방문인수다. 까치밥은 아니 직박구리 밥은 쪼아대던 것과 잘 익은 것으로 남겼다. 원 없이 인심을 쓴다. 모두 무료다.

겨울이 시작된다는 소설(小雪), 이십사절기 중 스무 번째 절기, 입동 후 십오일, 대설(大雪) 전 십오일. 손에서 길러지고 수확한 것들을 나누는 한계점이다. 이제 추워지니 추운 계절 조금이나마 온기를 더할 것들을 나눈다. 꼭 먹거리만 나누는 것이 아니다. 간만에 보는 사이건, 자주 보던 사이건 이런저런 이야기로 두런두런 나눈다. 어쩌면 소설에 맞춰 내리는 눈발같이 산만할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좋은 만남을 기억하라는 듯 내리는 겨울맞이 첫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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